「금도끼, 은도끼」 - 직업과 노동을 대하는 태도

두 나무꾼의 직업의식과 직업관 비교하기

by 황보현

https://www.youtube.com/watch?v=0fxVIRxNIK4

참고문헌: 「금도끼, 은도끼」

http://18children.president.pa.go.kr/our_space/fairy_tales.php?srh%5Bcategory%5D=07&srh%5Bpage%5D=20&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286


1. 돈은 벌어야 하고, 일은 하기 싫고


'아... 돈은 벌어야 하는데 일은 정말 하기 싫다. 이렇게 일해서 돈을 제대로 모을 수는 있나?'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지요?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땀방울을 흘립니다. 때로는 일의 힘겨움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돈을 벌긴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법을 간구하기도 합니다. 돈을 쉽게 벌려고 이른바 한 방을 노리기도 하지요. 참으로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게 이해가 되는 세상입니다. 돈 벌기 힘든 세상이고 일하기도 힘든 세상이거든요.


이러한 상황에서 「금도끼, 은도끼」는 우리에게 직업과 노동에 대한 위로와 교훈을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이 동화는 단지 정직함의 가치를 알려주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가 만연한 오늘날에 이 이야기가 주는 통찰은 그다지 없습니다. 하지만 「금도끼, 은도끼」에서 두 나무꾼의 상이한 직업의식을 비교해본다면, 우리의 직업 일체감과 직업윤리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직업 일체감이란, 자신이 가진 직업과 자신 스스로를 마치 하나처럼 여겨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여기는 감정입니다. 우리의 직업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직업 일체감을 갖고 있을까요? 직업윤리란, 직업인들에게 요구되는 행동 규범입니다. 직업윤리에는 크게 근로윤리와 공동체 윤리가 있습니다. 근로윤리란 맡은 업무를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처리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공동체 윤리란 노동을 할 때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봉사하며 대인관계에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자세를 일컫습니다. 우리는 근로윤리와 공동체 윤리를 준수하는 직업인일까요? 당신의 직업관은 어떠합니까? 이제 「금도끼, 은도끼」 속 두 나무꾼의 직업 일체감, 직업윤리를 비교하면서 통찰을 얻어볼까요?


2. 착한 나무꾼의 직업의식


옛날 한 작은 마을에 살았던 착한 나무꾼은 매일 열심히 나무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노동에 진중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한 번은 연못가의 큰 나무를 버려다가 쇠도끼를 실수로 연못에 빠뜨립니다. 도끼를 물에 빠뜨리자 나무꾼은 너무 절망한 나머지 큰 소리로 슬퍼하며 웁니다. 이런 반응을 보면, 착한 나무꾼의 직업의식에 대해 어떤 점을 알 수 있을까요? 그는 평소에 자신의 직업을 정말로 소중히 여겼습니다. 잃어버린 쇠도끼가 그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던 것 같지요? 나무꾼은 장인이었고 쇠도끼는 장인의 특별한 연장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쇠도끼는 이미 낡은 상태였는데, 나무꾼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연장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지요. 그 세월의 길이만큼 쇠도끼는 장인인 나무꾼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요? 착한 나무꾼은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까? 그는 직업 일체감이 매우 높은 사람입니다. 그에게 일이란 생계유지의 수단 그 이상이었습니다. 일체와도 같은 쇠도끼를 잃어버렸으니, 그렇게 장인 정신의 표현인 나무꾼으로서의 노동이 중지되었으니, 나무꾼이 서럽게 울었던 겁니다.


이제 산신령이 나타나서 차례대로 금도끼와 은도끼를 착한 나무꾼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가지려 하지 않고, 자신의 낡은 쇠도끼를 가지려 합니다. 이 나무꾼은 왜 금도끼와 은도끼를 택하지 않고 쇠도끼를 택했을까요? 금도끼와 은도끼는 나무를 베는 데 사용하기엔 곤란합니다. 금으로 된 칼이나 은으로 된 칼을 가지고 전쟁에 나가는 게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는 나무꾼에게 있어 효과적인 연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손에 익숙한 쇠도끼가 훨씬 더 효과적인 연장이었습니다. 착한 나무꾼은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 계속 노동을 지속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금도끼나 은도끼가 아니라 쇠도끼를 택합니다. 금도끼와 은도끼가 물질과 부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쇠도끼는 노동과 직업 활동의 지속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요.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통해 당장의 재산을 축적하는 것보다도, 쇠도끼를 통해 지속적으로 직업 활동을 진행하며 일정한 소득을 얻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의 근로윤리가 돋보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보다도 근로 그 자체가 더 중요했지요. 그런데 그는 근로윤리에 더하여 공동체 윤리도 준수하는 직업인이었습니다. 착한 나무꾼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택하지 않은 데에는 그의 공동체 윤리관이 영향을 미쳤지요. 금도끼와 은도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산신령에게 정직하게 말합니다. 노동하는 과정에서 연장자와 의사소통해야 하는 순간에 그에 대한 인간 존중과 예의를 나타낸 겁니다. 착한 나무꾼은 어떤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까? 그는 직업윤리에 확고했습니다.


착한 나무꾼의 직업의식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도 그 나무꾼처럼 우리의 직업과 노동에 진중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늘 쉬운 건 아니지만 우리의 직업을 좀 더 소중히 여기려 해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의 직업 활동을 지속해온 삶의 길이만큼 우리의 일에 애정의 깊이를 더할 수 있지요. 당신의 직업 일체감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해온 노동은 생계유지의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무꾼이라는 직업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일도 아니고 보수를 많이 받는 일도 아니지만, 착한 나무꾼은 그 일을 사랑하려 했습니다. 우리의 직업도 대중의 인정이나 많은 보수가 따라오는 일이 아닐 수 있지요. 하지만 착한 나무꾼처럼 우리의 일을 좀 더 애정 하려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더해 착한 나무꾼처럼 직업윤리를 준수하려 할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 근로윤리와 공동체 윤리에 고착할 것입니다. 일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훌륭하고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바람직해야 하지요. 일을 할 때 근로와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볼까요? 당신의 직업윤리는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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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욕심 많은 나무꾼의 직업의식


옆 마을의 욕심 많은 나무꾼은 착한 나무꾼에 대한 소문을 접합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공짜로 얻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나무꾼은 나무를 하는 척하다가 연못에 쇠도끼를 던져 놓고는 착한 나무꾼처럼 흉내를 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욕심 많은 나무꾼의 직업의식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이 나무꾼은 자신이 평소에 소지하던 쇠도끼를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쇠도끼를 물에 빠뜨린 후 산신령이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의 도끼를 아예 잃게 되겠지요? 그런데도 욕심 많은 나무꾼은 위험을 감수하고서 도끼를 물에 던졌습니다. 그 나무꾼은 자신의 도끼를 그다지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니깐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 나무꾼은 나무꾼이라는 자신의 직업과 노동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 불과했을 겁니다. 나무꾼이라는 직업은 그에게 소중하지 않았기에, 쇠도끼를 물에 던지는 위험을 쉽게 감수할 수 있었지요. 욕심 많은 나무꾼은 어떤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까? 그는 직업 일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그에게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는 자신의 쇠도끼도, 나무꾼이라는 직업도 쉽게 던져버릴 수 있는 사람이지요.


얼마 후 산신령이 나타나 욕심 많은 나무꾼에게도 금도끼와 은도끼를 보여줍니다. 당연하게도 이 나무꾼은 쇠도끼가 아니라 금도끼와 은도끼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 쇠도끼는 부질없습니다. 자신의 노동이 부질없는 것이니깐요. 그는 자신의 노동과 직업 활동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물질과 부 그 자체를 상징하는 금도끼와 은도끼만 필요할 뿐이지요. 쇠도끼를 통해 직업 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며 일정한 소득을 얻는 것보다도, 금도끼와 은도끼를 통해 당장의 일확천금을 얻는 쪽을 택한 겁니다. 그의 직업윤리에 대해 어떤 점을 알 수 있지요? 그에게 있어서 근로보다도 물질 그 자체만이 중요하지요. 이에 더하여 그는 근로윤리뿐만 아니라 공동체 윤리도 준수하지 않는 직업인입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이 금도끼와 은도끼가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그의 낮은 공동체 윤리관도 작용했습니다. 노동하는 과정에서 산신령에게 거짓말을 악의적으로 했지요. 연장자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인간 존중과 예의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은 어떤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까? 그는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의 직업의식으로부터 어떠한 경고의 본을 발견하게 됩니까? 우리는 그 나무꾼과는 달리 우리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힘들게 일을 하다 보면 그만 이 고통스러운 직업을 그만두고 싶기도 하네요.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의 그러한 힘겨움과 지친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탐내더라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일하는 사람은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법입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은 물질을 탐냈지만 결국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착한 나무꾼은 진중히 일하려 했기에 결국 온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당신은 일하지 않으면서 탐내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진중히 일하여 결국 온전히 만족하게 될 사람일까요? 이 일을 좀 더 애정 해볼 수 있을까요? 자신이 수고하는 일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노동은 생계유지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보람과 만족감을 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나무꾼이라는 직업이 그러하듯이 우리 직업은 평범하더라도, 평범한 직업 안의 고유한 노동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처럼 일을 쉽게 때려치우는 사람이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또한 욕심 많은 나무꾼처럼 직업윤리를 위배하고 있는 면이 있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직업 활동을 하면서 산신령과 같은 직장 상사를 대할 때, 우리는 정직하게 업무 보고를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직업윤리는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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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물질보다도 직업 그 자체


동화 「금도끼, 은도끼」는 직업과 노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착한 나무꾼처럼 훌륭한 직업의식을 가졌을까요, 아니면 욕심 많은 나무꾼처럼 낮은 직업의식을 가졌을까요?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이 도전이 되지만, 직업 일체감을 가지고서 직업윤리를 준수하며 일하려 해 보아요.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에게 금도끼와 은도끼뿐만 아니라 쇠도끼도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착한 나무꾼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통해 단번에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쇠도끼를 들고서 자신의 평소 직업인 나무를 베는 일을 지속하도록 요구받았던 겁니다. 단번에 물질을 얻었다고 해서 꾸준한 직업 활동을 그만해서는 안 되었지요. 이것이 경험 많은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착한 나무꾼에게, 더 나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 할아버지는 욕심 많은 나무꾼에게 금도끼나 은도끼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무꾼의 소유인 쇠도끼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욕심 많은 나무꾼은 자신의 연장과 직업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그 할아버지로부터 쇠도끼를 빼앗기고 나무꾼이라는 직업을 박탈당한 겁니다! 더 이상 쇠도끼를 들고서 나무꾼으로 일할 자격이 없다는 엄포였지요. 우리가 우리의 직업과 노동을 소홀히 여긴다면, 직장 상사로부터 그 노동마저도 박탈당할 겁니다. 이것이 욕심 많은 나무꾼에게, 더 나아가 우리에게 제시되는 또 다른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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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끼, 은도끼」는 물질을 위한 직업이 아니라, 노동을 위한 직업의 가치를 제시합니다. 욕심 많은 나무꾼이 나타낸 물질관이 아니라, 착한 나무꾼이 나타낸 직업관을 배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착한 나무꾼처럼 노동 활동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얻고 만족스러운 노동을 지속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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