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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현 Mar 27. 2023

가로수는 흙수저이다.

   한 나무가 탁 트인 공원에 우아하고 웅장하게 심겨 있다. 한껏 뿌리를 잘 뻗어 장성한 모습이다. 좋은 공기, 널찍한 토지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구나? 왠지 저 나무가 부러워진다고 해야 할까? 한편, 어떤 나무는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도로 옆 좁은 흙밭에 심겨 있다. 가로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 나무는 비좁은 땅에서 뿌리를 힘겹게 뻗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겠지. 늘 나쁜 공기만 마셔왔을 저 나무가 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두 나무는 주어진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식물은 기본적으로 처음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동물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 불리한 환경이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 반면 식물은 어떤 곳에 심기는 순간부터 평생 동안, 그 환경이 주는 한계에 구속되어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의 삶이란 게 이런 식물의 생애와 이치가 같지 않을까? 사람도 타고난 환경이 있고, 그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힘들다. 누군가는 탁 트인 공원에서 자라는 금수저이고, 누군가는 매연 가득한 도로변에서 자라는 흙수저이겠지?


   하지만 나쁜 환경에서 살아온 이 가로수를 관찰하면서 내가 놀란 게 있다. 가로수는 조그마하고 네모난 흙밭의 한계에 얽매여 자라가지만, 그 한계 내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로수는 좁은 흙밭 안에서 가능한 효율적으로 뿌리를 내뻗는 게 아니겠는가? 흙밭이 정사각형이면 사방으로 뿌리를 내뻗고, 흙밭이 직사각형이면 길쭉한 방향으로 뿌리를 한껏 내뻗는다. 식물학자에 따르면, '식물은 주어진 환경 내에서 에너지를 어떻게 쓸지를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합리적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가로수도 웅장하고 멋있게 장성하여 때가 되면 꽃 피우는 것이겠지? 결국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은 매연스러운 환경을 극복하고 매력적으로 꽃 피운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랑해 주리라. 


   태어날 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저 가로수의 환경과 닮아있다. 그렇지만 타고난 한계 내에서 한껏 합리성을 발휘하여 살아가자. 가능한 효율적으로 나의 뿌리를 내뻗어 보자. 융통성 있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도 멋있고 아름답게 자라난 가로수가 되겠지. 나의 처음 시작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꽃피운 나를 바라보며 사랑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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