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현 Apr 19. 2023

힘겨울 때 잠 들 수 있어 다행이야

   며칠간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온몸이 빨갛게 타오르는 듯 열을 내뿜으니, 머리에서는 열기와 지끈거림이 장단을 맞추어 반복하여 느껴지고, 뱃속은 무한히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콧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려 왔던지라 이제 부어버린 콧속은 꽉 막혀 숨 쉴 수가 없다. 콧김을 내뿜을 수 없으니, 뜨거운 열이 몸 안에 갇혀 더 끓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몸살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요한 잠을 청한다. 의식에서 수면 상태로 진행되는 그 순간, 그때는 참 묘하게 평온해진다. 잠에 빠지면 아픔은 잠잠해지네. 몸살의 쓴 맛에서 벗어나 달콤한 잠을 몇 시간 즐기고서 유유히 일어났다. 자고 일어 나니 몸은 훨씬 식은 것 같고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수면은 고통스러운 호흡으로부터의 휴식과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잠들 수 있어 다행이야. 한 주 동안의 수고스러운 업무가 끝나고서 주말의 편안한 휴식을 맞이하듯이, 열렬히 생명력을 생산해 낸 땅이 안식년 동안 사용되지 않고 충분한 쉼을 누리듯이, 우리는 그와 같은 이치로 잠을 청함으로써 휴식과 회복에 빠져들 수 있지.


   잠은 아픈 현실로부터의 벗어남을 가능하게 한다. 오랜 세월 힘겹게 종노릇을 해온 이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해방되듯이, 우리는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잠들 수 있다. 잠자는 그 순간은 몸살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참 자유롭고 행복하지?


   우리에게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며, 현실로부터의 도피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오늘 밤도 잠들 수 있어 참 다행이야.


   삶에서 쉼 없이 달려 나가기보다는, 현실과 늘 뜨겁게 마주해 있기보다는, 이따금 휴식과 회복과 도피의 몽환으로 잠시 빠져드는 쪽이 낫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코끼리가 가르쳐주는 것: 전문성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