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보현 May 03. 2023

부패와 발효 그 사이 어딘가

 

  난 곰팡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곰팡이가 핀 음식을 먹으면 배가 골골대며 아프다. 그래서 약간이라도 곰팡이가 핀 부패한 음식을 참 잘 감별할 수 있지.


   흥미로운 건 부패한 음식이 아니라 소위 발효 음식을 먹고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는 거다. 청국장이나 치즈를 먹으면 웬만해선 배가 골골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청국장과 치즈는 부패한 음식인가, 아니면 발효된 음식인가?


   나의 곰팡이 알레르기는 부패된 것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일부 발효된 것에도 반응하는 것이라 해야 할까? 부패만 나를 괴롭게 하는 게 아니라, 일부 발효도 나를 괴롭게 한다. 실은 사람들이 발효된 음식이라 여겼던 것이 알고 보면 부패된 음식인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이로우면 발효라 하고, 사람에게 해로우면 부패라 한다. 허나, 내 몸에 있어서 유해의 기준은 이러한 통상적인 발효와 부패의 기준과 다른 것이지.


   어떤 것을 부패되었다고 하고, 어떤 것을 발효되었다고 해야 할지? 사람은 수많은 미생물을 절대적으로 판가름할 자격이 없다. 신묘스러운 수많은 미생물을 부패와 발효라는 이분법으로 인간이 나누는 건 폭력적이지 않은가? 서양과 동양을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으로 바라볼 때, 그 사고방식은 비판받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신비스럽고 놀랍고 특별한 곰팡이와 미생물의 세계를 부패와 발효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방식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렇듯 부패와 발효의 사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분히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파악하는 시도가 종종 자연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도가 아닐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연은 인간의 관점에서 재단될 수 없는 웅장한 미묘함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술 - 생명력을 포착하는 기묘한 액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