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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ul 17. 2020

미국인들이 대체적으로 가정적인 이유?(feat.뇌피셜)

#11. 그의 하루 일과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평범했던 것들이 모두 바뀌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예전의 일상들을 좀 기록해두려 한다.


그는 평범한 3년 차, 4년 차(?) 직장인이다.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회사라 7시 15분쯤에는 집을 나서야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 같았다. 롱아일랜드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올라가야 하는 데다 그 길들이 꽤 막히는 길들이라 일찍 출발하는 편이다.


점심식사는 12시부터 1시까지 모두가 함께 밥을 먹는 개념이 아니라, 본인이 배고픈 시간에 알아서 혼자 또는 같이 챙겨 먹는다 했다. 그는 여유가 되는 주말에 미리 싸 둔 음식(이걸 meal prep이라고 하더라)이 있으면 그걸 챙겨 와 먹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보통 회사 옆 델리에서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먹는다.


주말에 준비해두는 음식들은 주로 삶은 달걀, 돈가스(직접 고기에 계란물, 빵가루를 묻혀 튀긴다), 카레가루(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밥이 노래지고 짭조름해지는 마법의 가루) 뿌린 밥, 스테이크 등이다. 보통 주말 family dinner나 외식 후 남은 음식을 싸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요일 저녁식사 + meal prep. 치킨가스 10인분은 만든 것 같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5시. 야근은 거의 없고 그때쯤 출발하면 집에는 6시에 도착.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땐, 야근 없이 6시에 퇴근하면 친구들과 꼭 맥주를 한잔씩 하고 집에 들어갔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맥주도 꽤 좋아하는 편이고 친구들도 집 가까이 사는데 동네 술집이 꽤 떨어져 있어 걸어갈 수 없는 거리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한국처럼 택시가 도로에 즐비한 환경이 아니고, 우버를 부르자니 애매한 거리, 걸어가기엔 더 애매한 느낌(이 동네는 밤에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다)이라 애초에 평일 저녁 술 약속을 잘 안 잡는 것 같았다.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해가 긴 여름날에는 강아지들을 산책시킨 후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수영장, 자쿠지에서 몸을 풀거나 하는 게 그의 평일 퇴근 후 일상이었다. 번화가가 집 가까이 없다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가정적이게 만드는 것일까. 아님 원래 그의 성향인 걸까. 이유가 뭐가됐든 집순이인 나로선 최고의 남자 친구(예비신랑) 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평일을 잔잔하게 보내고, 주말엔 친구네 집 파티를 간다든가 외식을 나가곤 하는데 일요일 오후부터는 다시 평일 모드가 되어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마당에 잔디를 깎고 하는 잔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혼자 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취미생활이 참 다양했고 약속이 없더라도 혼자서 하루하루를 재밌게 잘 보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긴 기계로 잔디를 깎으면 풀내음이 마당 가득했다. 업체를 불러 관리하는 집들도 많지만, 남자 친구는 직접 관리!


날씨 선선한 봄, 가을 뒷마당에서 스모어(살찔 것 같은 맛있는 맛)


반면, 나는 꽤 오랫동안 퇴근 후 또는 주말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 못 사는 병에 걸려있었다. 친구와 술을 진탕 마시거나 페스티벌, 여행을 가는 등 뭐든 나가서 누굴 만나야 했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괜스레 우울해져 숨 죽은 대파처럼 집에 널브러져 있었다. 20대 중반까지 계속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그와 비슷한 이유로 평일 저녁엔 집에 와서 쉬어야 했고, 주말에만 근근이 약속을 잡는 패턴으로 생활이 바뀌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내가 집순이임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과 진탕 놀고 오면 늘 가슴 한편이 불안하고 집에 들어와도 또 얼른 약속을 잡아야만 할 것 같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생활 패턴이 바뀐 후부터는 스스로 중심이 더 잡힌 느낌(?)이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진 후 사람들을 만나고 어딜 가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어? 나 집에서 뭐하고 지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를 봤다. 예전의 나였으면 당연히 나 또한 그렇게 느끼고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을 것 같은데, 요즘의 나는 여러 취미생활을 즐기며 슬기롭게 지금을 보내고 있다.


그와 나의 생활패턴이 어느 정도 맞아진 후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불가피하게 롱디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차근차근 하나씩 하다 보면 빛을 보는 그 날이 곧 오겠지?




* 미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가정적이라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내가 느낀 그의 모습과 내 모습을 꾸밈없이 쓴 것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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