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딸이었던, 세상 모든 엄마를 위한 이야기
오늘 우리 엄마를 이겼다
어릴 때 내가 울고 떼쓰면 엄마가 내 코랑 입을 틀어쥐고 죽으라고 소리쳤던 기억, 내가 좋아하는 애착 베개에 바퀴벌레 퇴치약을 한 통 다 뿌리면서 그렇게 좋으면 껴안고 자라고 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훤하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지만 길게 울고 악쓰고 떼쓰는 걸 못 참는다. 어떤 유년시절의 기억은 평생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겐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나의 트리거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힘들 때마다, 불쑥불쑥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던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떠오른다. 코랑 입을 틀어쥐고 숨을 못 쉬게 해 버리는 것.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놀란 나머지 울음이 억지로 삼켜지는 것. 그래서 조용해지는 것.
오늘도 미운 네 살이라고 악쓰며 우는 아이 울음소리를 한참 듣다가, 내 안에서 수십 번 충동이 왔다 갔다 했다. 입이랑 코를 틀어막고 숨을 못 쉬게 할까, 발로 차버릴까, 애 얼굴에 이불을 덮어버릴까 못된 말로 협박할까 등등 내가 받은 모든 학대와 폭력의 방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든 충동 속에서 어린 시절 내가 울고 떼쓸 때 나는 무엇을 받고 싶었는가를 생각해 봤다. 내가 우리 엄마한테 바란게 무엇이었는지를. 그 결핍으로 아직도 내 안에 남은 상처받은 아이는 무얼 원하고 있는지를. 나쁘고 좋지 않은 모든 선택지들 중에서 단 하나. 우리 엄마가 그냥 나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해주길 바랐어. 내가 아무리 못난 자식이었어도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주길.
그래서 그 모든 충동을 다 깨고, 드디어 우리 엄마한테 받은 상처를 깨고 나와서 내 아이를 안아줬다. 꼭 안아주면서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울고 떼를 쓰고 싫어 싫어하고 못된 말만 해도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하루종일 못된 말만 하던 우리 애가 작은 고사리손으로 나를 마주 안아줬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여줬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 잘했어요. 엄마 정말 고생했어요 하고.
그러자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아져서 떼도 안 쓰고 또 잘 뛰어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징징댔던 아이가 사랑한다는 포옹에 말 한마디에 변하는 걸 보면서 사랑은 모든 걸 이길 수 있구나. 정말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삼십 년 넘게 나는 우리 엄마한테 받은 학대에 갇혀 살았는데 나는 우리 엄마처럼 하지 않았구나. 내가 드디어 우리 엄마를 이겼구나. 스스로 깨고 나왔구나 싶어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성인 되고 나서 독립해서 일 년 가까이 심리상담을 받고 나서도 다 극복하지 못한 내 트라우마를 나는 삼십 년이 넘어서야 극복했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내 아이한테 상처를 주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펑펑 울었다. 남편이 왜 우냐고 묻는데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냥 안아달라고 하고 울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데 드디어 이겼다. 이제 드디어 돌아가신 엄마와 나는 정말로 이별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