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아 Aug 09. 2024

학대받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요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사랑은 알아요.


내가 어린 시절 받은 사랑은 조건이 걸린 사랑이었다. 전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받아야 매를 맞지 않고 지나갔고, 나보다 네 살 많은 오빠의 밥을 차려주고 치워주지 않으면 집에서 하는 것도 없다고 혼이 났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오빠의 스트레스 분풀이로 샌드백처럼 하교 후에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두들겨 맞았다. 키가 180cm가 넘고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했기 때문에 나는 신체적으로 이길 수 없었다. 엄마는 거구의 오빠를 나보다 더 안쓰럽게 여겼다.


오빠가 내게 저지른 성추행도 내 잘못이 되었다. 너도 잘못을 했을 거야.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날도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매를 맞았다. 엄마에게 항상 아픈 손가락인 오빠, 불완전한 그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조건이 걸린 사랑 속에서 자라며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오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며 자라났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 텐데. 너 같은 건 낳지 말았어야 했어. 삶이 힘들 마다 엄마는 원망의 화살표를 항상 나에게 던졌다. 화살표들은 어린 가슴에 결핍의 구멍들을 만들었다.


내가 공격당하지 않고 다정히 들었어야 했던 말과 마땅히 받았어야만 했던 사랑의 방식들. 비틀리지 않고 온전히 건강하게 주고받아야 했던 감정의 교류들. 나는 이 모든 것을 놓쳤다. 어린 시절 가정환경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외로웠고 불안정했으며 때때로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핍을 잘 아는 지금. 내 가정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을 산다. 잘못된 육아를, 사랑의 방식을 경험해 보았기에 최악과 차악이 무엇인지 나는 잘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심심할 수도 있는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기는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나는 지난 시간 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간절하게 살았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실수로 넘어져 다쳐도 꾸중 대신 괜찮냐는 걱정을 바라고, 바보 같은 실수를 해도 매를 맞는 대신 다음에 다시 해도 괜찮다는 격려를 바랐다.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의 방식을 내 아이에게 행하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도 함께 자라고 있다. 나는 따듯한 포옹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모습이 있기까지 내 마음속의 크고 작은 충동들과 트라우마, 트리거를 누르고 때때로 직면하고 싸우고 이기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내 삶은 스스로와 싸우는 고요하고도 치열한 전쟁터일 것이다.


스스로를 마주하고 싸우는 모든 순간, 그냥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나는 주문처럼 되뇌곤 한다.

부디 내 아이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에 외로움과 두려움보다는 따듯함을 느끼길. 설령 문 밖의 온 세상이 너를 공격해도, 우리 집에서는 가장 안전함을 느끼길. 살다가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는 엄마아빠를 떠올려주길. 그리고 우리와의 기억이 네 삶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어떤 신도 믿지 않는 내가 아이러니하게 기적 같은 삶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정성 들여 쌓은 블록도 한 번의 충격에 무너지듯 완성보다 파괴가 더 쉽다는 것도 안다. 나는 파괴하고 상처 입히는 방법을 슬프게도 더 많이 안다.


자연스러운 하나의 연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수천수만 수백 번의 사건에서 적절한 반응과 따스한 반응 그리고 무한한 격려와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다. 내 아이의 안정된 정서와 긍정적인 자아 존중감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줄 수 없다. 내 아이와의 관계는 블록 쌓기처럼 내가 올바르게 잘 쌓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평범했던 하루를 혼자 복기한다.

많이 안아주고 사랑하고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혹여나 훗날 아이가 나의 사랑을 부족했다고 느끼고, 외로웠다고 말하진 않을지 항상 걱정한다.


내가 그런 의도로 한 말과 행동은 아니었지만, 훗날 아이의 마음에 내가 모르는 상처가 남을까 봐 아이를 대하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지만 매번 조심스럽다. 나는 쉽게 망각했지만 내 아이는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있을까 봐 두렵다. 실은 아이를 대하는 모든 순간이 떳떳하지 못하다.


나는 완벽한 부모가, 완전무결한 엄마가 아니다. 수많은 육아서적을 사서 읽고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올린 유튜브의 육아강의를 들어도 순간순간 아이를 대한 나의 방법이 최선이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최악만 피한 차선이었을까 봐. 누구보다도 더 엄격하게 내 자신을 몰아세우곤 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딸은 엄마의 삶을 따라간다고, 엄마 팔자 벗어날 수 없다고. 학대받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결국 내가 내 아이를 학대할 것이며 내 아이도 나의 삶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논리로 내게 상처를 준다. 그 말들은 논리 정연하다.


그렇다면 나는 논리 정연하지 않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다정보다 폭력의 방식을 더 많이 배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할 것이다. 왜냐면 나 같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더는 태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아이는 나와 다르게 자라서 내 흔적을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끊어내고 비틀린 마음 없이 온전히 나 자신과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겐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사랑이 아이를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랑의 힘을 나는 믿는다. 사랑은 논리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없고 이유도 없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 처음 내게 써준 편지 답장으로, 마음으로 읽는 편지를 통해서 나는 그렇게 배웠다.


다정함을 배우지 못해서 서툴게 연기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배워서, 글자도 모르는 이 어린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답장을 써줬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나에게 내 아이는 완전한 사랑을 주었다. 우리는 분명 완벽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편지에는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노력하고 잘 해내면 된다고 쓰여있었다. 나는 삐뚤빼뚤 글씨들을 마음으로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엄마~ 선물이 있어요! 편지예요!

엄마 사랑한다고 썼어요. 엄마, 사랑해요!




방법이 틀렸다면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면서 내 엄마와는 다르게 헤쳐나가면서 살아갈 거예요. 사랑의 방법은 몰라도 사랑은 알아요. 받아보지 못해서 그게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 건지 더 잘 알아요. 그러니까 더 잘 지킬 수 있어요.


선택하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상처받은 사람들을 단정 짓지 말아 주세요. 온실 속 화초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잡초가 거친 비에도 바람에도 더 끈끈히 견뎌요. 나는 내게 그런 힘이 있다고 믿어요. 내 아이는 이제 나 뿌리예요. 이 아이가 있어서 나는 더 열심히 살아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 돼요.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꼭 지켜봐 주세요.

이전 03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