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주제에 대한 나의 선택은 ‘행복’이었다. 예전에는 목표 지향적이고, 이성적인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남들이 그렇다길래 그런 줄 알았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원하는 목표도 있고, 예쁜 가정도 만들고 싶지만 그 목표를 이뤄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매 순간 행복하면, 목표를 이뤄도 행복하고, 이루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안다.
영적 지도자들은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매일 하던 일을 그대로 한다는 글을 봤다. 그들은 하지 못한 일이란 것을 남겨두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해야지 미뤄두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와 비슷하게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일들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과 하루를 내가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은 쉬운 일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과,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가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후회될 일은 정말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나에게는 버킷리스트가 많다. 유럽여행 가기, 파리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 패러글라이딩 해보기, 내 작업실 만들기 등등 엑셀 파일로 만들어놓은 수십 가지 버킷리스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일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이루지 못해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내 하루를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금은 느리게 순간순간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음미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여자 주인공의 일상을 보면 정말 별 것이 없다. 좋아하는 빵집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반신욕을 한다. 소설을 읽을 때 그 일상이 매우 부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 주인공은 자신의 별 것 없는 그 일상을 정말로 사랑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그 힘듦을 버텨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살만해지는 날이 온다. 그때 내게 찾아온 것은 무기력이었다. 삶의 의욕을 찾기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을 때 무미건조하다고 느낀 내 하루를 바꾸기로 했다. 내가 꿈을 다 이뤘다면 나는 당장 어떤 하루를 살까? 생각했다. 난 아마 주변의 물건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바꾸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미루지 않기로 했다. 외출복 살 돈도 부족한데 무슨 파자마야 하며 사지 않았던 나는 마음에 드는 핑크색 파자마를 구입했다. 3만 9천 원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왜 안 샀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은품으로 받은 파우치를 들고 다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누피 캐릭터가 들어간 파우치를 샀다. 오래된 진보라색 이불 대신 내가 사랑하는 코랄색 체크 침구로 바꾸고, 내가 좋아하는 소라색 핸드폰 케이스로 폰에도 새 옷을 사줬다. 사소한 것들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물건을 바꾸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좀 더 여유 있게 출근 준비를 한다. 일어나면 내게 따뜻한 물 한잔도 챙겨주고, 아침밥도 먹여준다. 출근해서는 맛있는 간식과 커피도 내게 선물하고 그 시간을 진짜 기분 좋게 즐겼다. 사소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루 사이사이에 해주니 다시 의욕이 생겼다. 나를 찾아가는 기분, 진정한 나로서 사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특별한 순간들을 많이 만날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은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실천하고 밑줄을 그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반복되는 내 일상을 더 사랑스럽고 즐겁게 만들면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가장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나만의 행복이란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