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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01. 2020

나는 내가 잘 됐으면 좋겠어

어릴 때부터 나는 멋진 삶을 꿈꿔왔다. 내가 보기에 멋진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꿈이 생기기만을 기다렸다. 꿈이 생기기만 하면 나는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그럼 당연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꿈이 없었다. 이것저것 관심 가는 일들은 있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겁이 났는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기 바빴다.


대학은 결국 성적에 맞춰서 가게 됐고, 다시 꿈을 찾았다. 적성검사를 해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했다. 사실 나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꿈을 정하고서 경험을 시작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꿈은 한 번 정하면 평생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궁금했던 경험들은 해보지 못해 꿈은 찾을 수 없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취업의 길도 쉽지 않았다. 열심히 스펙을 쌓고 지원을 해도 떨어지는 것은 너무 쉬웠다. 수많은 탈락에 멘털이 약해지면서 살은 빠지고, 살면서 처음으로 가위에도 눌리면서 힘든 취준 생활을 끝내고 취업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취업한 것만으로도 기뻐서 일이 넘쳐나고, 야근을 해도 좋았다.


하지만 갈수록 야근은 심해졌고, 나는 일개미가 됐다.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일하는 날은 비일비재했고, 바쁜 시기에는 밤을 새우거나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날도 많았다. 점점 회사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던 선배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선임이 돼있던 나는 여전히 야근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몸은 몸대로 상해서 머리가 빠지고 부정출혈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몇 년 전에 찾아뵌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봬야지 생각만 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일만 하다가 죽겠구나. 잘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일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퇴사 후 나의 꿈은 직장인은 아니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다시 직장인으로 살고 있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베짱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다시 일개미로 살아가고 있다.


30대 중반의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애매한 나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꿈을 꾼다. 정확히 어떤 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표현하면서 살고 싶다. 글로, 혹은 그림으로, 혹은 노래로 댄스로 어떤 형식으로든 나를 표현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어릴 때는 정하지 못해 아무것도 못했다면 지금은 꿈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 꿈을 찾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말이 안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내 내면에서도 그런 말들이 계속 오고 간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효리가 그러지 않았나.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 바라는 꿈들이 이뤄진 적이 별로 없고, 좌절하는 순간들이 계속 찾아와서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내가 잘 되기를 꿈꾼다. 어릴 때부터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면서 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쳤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그랬다. 누구나 때가 있다는데 왜 나의 때는 오지 않을까? 잘 될 때도 되지 않았나 지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잘되기를 내가 바라지 않으면 누가 바라겠는가? 지겹지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잘 되기를 기도해본다.  


그림: 나의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가 내 안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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