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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카피 Mar 02. 2020

사랑의 이야기는 두려움의 이야기다

영화 [캐롤]을 보고 왔다.


# 사랑 얘기다. 별다른 구조나 낯설은 배치 같은 건 없다. 사랑 얘기는 사랑 얘기라는 그 자체만으로 언제나 아름답다. 스토리의 힘보다 사랑이 주는 아름다움의 힘은 늘 수만배 크니까.


# 우미노 치카(うみのチカ)의 [허니와 클로버] 1권에는 다케모토가 하구미를 처음 만나는 순간 함께 있던 마야마의 방백이 나온다. '이거 참. 난생 처음 봤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나까지 가슴이 설레고 말았다.' 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두 장면 중 하나라 할 터널 씬- 처음 캐롤의 집으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테레즈의 모습이 바로 '그 순간'이다. 관객인 나조차 설렐 수 밖에 없는, 누군가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 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다른 하나의 장면은 캐롤의 눈으로 내려다 보는 테레즈의 몸이다. 캐롤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워"라고 하는데,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어지는 짧은 쇼트들은 수년 내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섹스씬이었다.


# 테레즈 역의 루니 마라는 자꾸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했다.


# 영화 속에서 테레즈의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은 그녀를 '놓은' 후 어느날 길 건너편에서 바라보게 된 캐롤의 시선 속에서다. '내것'이 아니게 된 그/그녀의 삶의 순간들은 면도날처럼 아름다운 법이다.


# 주인공 두 캐릭터는 두 말 할 필요 없이 멋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애비(사라 폴슨扮)에게 계속 눈이 갔다. 깊고 단단한 사람.


# 두려움에 대한 얘기다. 실은, 모든 사랑 얘기는 두려움에 대한 얘기다. 모든 사랑은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이고, 모든 새로운 것은 영원히 새로울 수 없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렵다. 또한, 모든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 이외의 것들에 대한 반역이고, 모든 반역엔 댓가가 따른다. 그래서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댓가의 무게에 짓눌린다.사랑의 쾌감은 다분히 그 두려움들에 저항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두려움을 끝까지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사랑을 '놓는'다. '놓는다'고 하지만 사실 두려움 이전의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두려워 할 용기가 있다는 뜻이다.


# 내가 없으니 눈부신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캐롤은 테레즈에게 말한다. 그 대사에서 주르륵 눈물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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