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 아래서, 혹은 박시은 특급
영어 못하고, 한자도 백치에 가까운 나는 글 쓰다 필요하면 웹을 검색해 철자를 확인하거나 통째 복사해 붙여 쓴다. 그때마다 자주 불안해 한다. 이 철자가 꼭 맞다는 법이 어딨지?
아주 오래전 장르문학 계간지 [버전업]의 '작가X' 코너에 듀나가 썼던 단편 [스핑크스 아래서]가 생각난다. 엉뚱하고 과감(?)한 평이겠지만 난 듀나가 쓴 그 많은 글 중 이 짤막한 소설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대체 객관적인 사실이란 무엇이며, 그런 게 과연 있긴 있는 걸까 하는 조마조마한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했던.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대로 오면 곽재식의 [박시은 특급]을 떠올릴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걸까-라고 이 소설을 읽을 그 때도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며 오래 생각했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음에도 이런 감정에 압도되어 마음껏 재미있어 하지 못했을 정도로.
바로 얼마전엔 스포츠 에세이를 낸 지인에게서 이런 내용의 얘기를 들었다. 그야말로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존재했던 사실의 기록 중 숫자' 부분조차 자료의 출처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그 유명한 김재박 선수의 개구리 번트가 나올 시점의 아웃카운트는 몇이었나? 이 틀릴래야 틀릴 수 없는 숫자조차 야구협회, 방송국, 신문사 등 자료마다 달랐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느 한 자료를 참조할 수 없었고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참조하고 검증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수년째 하다 보니 쉽게 '진실' '사실' '팩트' 운운하는 사람들이 미안하지만 가볍게 느껴진다. 물론 나는 상대주의를 혐오하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분명 '절대적'인 것- 절대적인 진실이나 절대적인 숫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럼 어느 진실이 절대적이냐 어느 숫자가 틀림없냐는 물음에 답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대답할 수 없다고 그 진실과 숫자가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처럼 들릴 걸 알지만, 나이 먹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회색'이 되어가는 걸 전처럼 비난만 하지는 못하겠다. 점점 잘 보일수록, 잘 안보이는 것들이 두려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