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생활공간 PBV
목적지로의 편안한 이동을 넘어 '이동의 가치'를 논하는 모빌리티의 전환을 마주하고 있는 현재, 나날이 세분화되고 구체화되어 가는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상은 PBV(Purpose Based Mobility)로 대변될 수 있다. 탑승자 및 물류 운송의 개념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와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는 PBV를 통해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동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빌리티의 미래는 PBV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이동 환경의 변화된 모습을 더욱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패러다임의 변화와 성장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車)라는 뜻의 자동차의 등장은 현대 문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885년 독일의 카를 벤츠에 의해 최초의 말 없는 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헨리 포드의 모델 T가 자동차의 대량생산으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20세기 현대 문명의 발전 속도는 비약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자동차의 대량생산 및 이로 인한 대중화는 이른바 *모터리제이션이라 불리며 자동차를 위시한, 토목, 건설, 여가, 문화 등을 위한 다양한 파생산업을 촉발했으며, 자동차 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 자동차가 사회와 대중에 널리 보급되고 생활 필수품화되는 현상
영국 왕립예술대학 모빌리티 디자인 연구센터(IMDC)는 모빌리티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 '자동차 산업은 1970년 모터리제이션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으나 2010년 이후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리는 자동화 및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하는 모빌리티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자동차 시장이 포화 및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 요인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집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소유재산 중 하나로 여겨져 왔던 자동차가 금융위기로 인해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 아닌 금전적 부담을 가중하는 요소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집과 차량을 소유하기 위해 무리한 대출 등으로 오히려 자신의 재산에 종속되어가는 부모 세대를 보게 된 당시 밀레니얼 세대의 자녀들에게 '소유'의 개념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발전한 정보통신기술 ICT로 인한 공유경제의 활성화는 공유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를 등장시켰으며, 기존의 철옹성 같았던 이동 수단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자동차와 스마트 모빌리티의 개념적 차이를 2G 피처폰과 스마트폰에 비유하였던 IMDC 데일 해로우 교수는 기존의 자동차 개념인 Automotive는 2015년을 기점으로 점차 하락하는 국면으로 접어드는 반면, 자율주행 및 자동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모빌리티는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며, 2030년 후반부터 기존의 자동차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Strategic Market research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규모 2021년 약 32조 원 규모였으나, 2030년까지 250조로 급성장하며, 연평균 25.7% 육박하는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을 위한 주요 기업을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로 제한하지 않고, 구글, 메타, 애플과 같은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 그리고 아마존, 도미노와 같은 배달 업체들 또한 미래의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는 업체로 예견했다는 점이다. 모빌리티 가치가 기존의 이동 개념을 넘어선 소통과 door-to-door를 통한 궁극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 중심 모빌리티 연구의 중요성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적인 화두는 단연코 사용자다. 사용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빌리티는 허울 좋은 스케일 모델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PBV 등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빌리티의 핵심 개념은 사용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미래의 다양한 교통 환경에서 사용자의 역할과 가치는 무엇인가?', '이동 간 사용자는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할 것인가?' 등 사용자와 관련된 다양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보기 좋은, 멋진 스타일링의 자동차가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가장 편안한 이동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한하기 위한 고민은 고령자를 비롯한 교통약자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결국 포용과 통섭을 주된 가치로 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 방법론을 통한 모빌리티 디자인 솔루션으로 이어진다.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 :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의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의미
영국 IMDC의 자율주행 PBV 디자인 프로젝트인 GATEWAY는 영국 정부 산하 자율주행 차량 연구소 및 TRL 교통 연구소, 그리니치 구, 통신 및 교육기관 등이 연합하여 자율주행 모빌리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율주행 차량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여기는가?', '자율주행 차량의 디자인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가?'에 대해 조사하였다. 이를 위해 100여 명에 가까운 고령자, 시각장애인, 휠체어 사용자 등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듣고, 기존의 대중교통 사용 환경 관찰 및 워크숍을 통한 사용자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자율주행 모빌리티 디자인 제안 등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GATEWAY 프로젝트의 주요 가치는 사용자의 의견과 경험 등 다양한 사용자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희망', '염려'로 나누어진 미래 모빌리티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다. 주차 걱정이 없는 이동 경험, 이동 간 다양한 업무 및 여가 등 자율주행 모빌리티가 가져올 희망적인 미래 시나리오와 더불어, 자율주행 차량과 보행자 간의 소통 오류로 인한 사고 및 해킹 문제, 교통 환경 변화에 따른 부적응 등 부정적인 시각도 함께 고찰하며 미래의 모빌리티 환경이 맹목적인 편리함과 쾌적함으로만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어내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용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고령자를 위한 모빌리티는 단순히 편리한 이동 수단 제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와 결부되는 핵심적인 이슈이다. 영국 The Helen Hamlyn Centre for Design에서 진행한 고령자를 위한 연구 개발 보고서에 의하면, 고령자를 위한 이동 수단의 중요성과 가치는 독립성, 정체성, 세대 간 소통 및 통합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령자에게 있어 이동 수단의 가치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융합과 연결성으로, 특히 사회적 시스템 및 목적지로의 이동 및 타인과의 소통 등 고령자들에게 필요한 장소와 연결의 가치를 통해 사회적 건강함을 제공하는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영상으로 보는 현대자동차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자동차가 CES 2022에서 발표한 메타 모빌리티 비전을 담은 영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상 속의 고령자 주거 환경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흡사 히든 테크 개념의 PnD모듈을 기반으로 한 모빌리티 플랫폼 위에 얹힌 바스켓에서 지팡이를 고르고, 또 다른 PM(Personal Mobility) 개념의 PnD 플랫폼 모빌리티를 타고 손자를 보기 위해 장소로 편안하게 이동하는 모습은 고령자를 위한 모빌리티의 가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PBV를 통해 그려보는 미래 모빌리티
목적 기반 모빌리티 PBV의 개념은 목적과 상황에 특화된 이동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개념은 MaaS(Mobility-as-a Service)로 시작된 이동 수단에 '서비스' 개념이 더해진 이동의 새로운 가치를 보여준다. 이는 목적지로의 안전한 이동을 넘어선, 물류, 새로운 이동 경험 제공 등 더욱 확장된 이동의 개념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이동 서비스 제공자' 선언과 더불어 다수의 자동차 회사가 더는 쇳덩이로 만든 탈것(Metal Mover)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자로 거듭나고자 한다는 전 세계적인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현대자동차는 2020 CES에서 PBV 개념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모빌리티 비전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각형에 가까운 넓은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무공간, 의료, 거주 및 휴식 공간 등 새로운 이동 경험 제공을 강조했다. 물류 배송 등 다양한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전장이 3~6미터까지 확장될 수 있는 전용 플랫폼을 적용하고 상단은 모듈식으로 구성되어 문자 그대로 PBV에 충실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CES 2020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비전 알아보기
이와 같은 PBV 개념을 더욱 고도화시킨 연구의 결과를 UX 테크데이 202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래 모빌리티 관련, 모빌리티 속 소음 저감 기술 및 주행 사운드에 최적화된 미래 모빌리티 사운드 익스피리언스 개발, PBV 전용 시트 프로토타입인 반응형 시트 컨셉 등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진행한 연구 결과와 더불어 2대의 PBV 스터디 모델도 등장하였다.
우드 패널로 구성된 스터디 벅은 처음으로 아이디어가 구상되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과 컨셉의 검증 및 반영하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 연구 과정을 거쳐 진행된 엔지니어링 스터디 모델은 공항 픽업용 PBV라는 특화된 '목적'을 갖고 개발된 모델로, 공항 픽업이라는 시나리오에 특화된 수납공간 및 모듈 개념이 적용된 시트 배치를 통해 탑승 공간을 확보하고 쾌적한 이동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와 함께, 현대모비스의 모드 변환 콕핏은 주행 모드별, 증강 현실 HUD, 인터랙션 라이팅 변화 및 알맞은 자세로 조절되는 시트 등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며 '목적에 특화된' 사용자 중심 미래 모빌리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 전반에서 체감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는 기술과 환경 그리고 사용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소통의 채널이 다양하지 않았던 과거, 자동차는 사용자가 원하면 언제나 어디서든 목적지로 이동하며 물적, 인적교류를 가능하게 하였던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법이었다.
ICT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이동 수단의 목적을 더는 원하는 목적지로의 이동을 통한 교류와 소통만으로 제한하지 않게 되었다. PBV를 통해 맞이하게 될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는 새로운 스타일링과 고성능으로 기존의 이동 수단이 제공하였던 가치를 뛰어넘을 것이다. 목적에 특화된 다양한 콘텐츠와 맞춤형 공간을 통해 사용자 중심 이동의 가치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진화하며 또 다른 가치와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