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랑 잠깐 얘기 좀...
일요일 밤, 아이가 아빠와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건가 궁금했지만 아빠랑 할 이야기가 따로 있겠지 짐작했다. 언제부턴가 민감한 이야기는 엄마보다는 아빠에게 털어놓는 중2 아들이다. 처음엔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구든 어떤가. 아빠와 친한 아들이면 그걸로 됐다.
잠시 방에 있던 두 남자가 욕실로 향했다. 여전히 소곤거리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제야 눈치를 챘다. 며칠 전부터 아이는 아빠에게 묻고 또 물었다. 바로 "첫 면도"에 관한 이슈였다.
언제부턴가 코 밑이 거뭇해졌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목젖이 튀어나왔다며 만져보라고 하는 아이를 보며 웃었다. 여전히 내겐 어린아이 같기만 한데 아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건강하고 바른 남자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면도 거품을 잔뜩 묻힌 아이가 다급히 엄마를 찾았다.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달란다. 혼자서는 겁이 났는지 아빠의 손을 빌려 생애 첫 면도를 시작한 아이를 축하해 줬다.
이제, 진짜 남자가 되어가네. 아들, 축하한다!
남편의 말로는 아직 솜털 수준이라 면도한 뒤에 애프터 쉐이빙 제품을 발라도 따갑지 않을 거라 한다. 남자 형제가 없는 내게는 낯선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사춘기 아이의 면도를 지켜볼 수 있다니 내가 운이 좋은 셈이다. 면도한 자리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약간 까슬한 느낌이었다. 손 끝에 전해지는 촉감, 그리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는 내 품을 떠나고 있다. 아직까지는 나를 안아주고, 내 손도 잡아주는 아들이지만 곧 자기만의 세계를 탐험하느라 엄마와 거리를 두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첫 면도하던 순간을 기록해 둔 사진을 보여주고 아이의 모든 모험을 응원하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런 남자로 자라주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