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특정한 병명으로 규정할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한 존재다. 병명이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병명은 당신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 안데르스 한센,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 중에서
새벽에 읽은 책에서 그랬다. 불안과 우울은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한다. 너무나 불안해서 항불안제를 먹고, 몹시 우울해서 항우울제를 먹고 있는 나로선 기쁠 일이다. 불안과 우울 모두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긴, 살아있으니 불안하고 우울할 수 있다. 죽은 이에게 이런 감정은 허락되지 않으니까.
내가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그것만이 나를 설명할 수야 없지 않나. 그런데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우울증 그 자체인지, 우울증이 나라는 존재 전부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곧 우울증이라는 공식에 동의해버리고 나면 슬퍼진다. 영영 우울증을 고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어쩌면 영원히 함께 가야 할 친구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기분은 변하는 것이다. 기분은 변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분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는 우울이나 불안 같은 어두운 기분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심한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그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안데르스 한센,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 중에서
우울증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분도 영원하지 않다. 우울하고 불안해 미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다. 사라진다. 약을 먹으면 더 빨리 사라질 수도 있다. 숲에서 걷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면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나의 우울감과 불안감은 찰나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순간의 즐거움, 슬픔, 행복감, 좌절감은 끝이 길지 않다.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러니 기운을 낼 수 있다. 요즘은 사무실의 내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해도 불안하고, 두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사무실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나 홀로 외딴섬에 고립된 것 같은 기분에 답답해진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지만, 두 아이들을 생각하고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끝없는 자기 주문을 외지 않으면 직장 생활이 힘들 지도 모른다.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생존이라는 점을 알고 나면 현재의 우울과 불안이 반드시 우리가 아프다는 뜻은 아님을, 뇌가 고장 났다는 뜻은 더더욱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 안데르스 한센,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 중에서
책 제목처럼 뇌과학이 내 마음을 돌보게 해 준다면 좋겠다. 나의 우울증이 뇌가 아픈 게 아닌가 싶어 요즘 뇌과학 책을 찾아 탐독하는 중이다. 나는 마음이 아픈 것인가, 뇌가 병든 것일까. 어쩌면 둘 다 지치고 고단해서일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나는 우울증이 아니다. 우울증도 내가 아니다. 나는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