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회사 얘기도 잠시 멈춘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훨씬 여유롭다.
긴장을 내려놓고, 오직 보이차의 맛과 찻잔의 온도, 그 순간의 분위기, 서로의 마음결을 살피는 순간을 즐긴다.
우린, 쉬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보이차를 마시면 대화가 끊기는 순간의 침묵도 좋아지게 된다. 끝없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책을 읽다가 '치타델레'라는 말을 배웠다. 독일어였다.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독일어에는 ‘치타델레(Zitadelle)’라는 말이 있다.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라는 뜻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작은 방을 의미한다. 나는 섬세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치타델레라고 생각한다. 챙겨야 할 것, 챙겨야 할 사람, 챙겨야 할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오직 나 자신만이 남겨진 시간과 공간이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고립된 공간 속에서만 남들에게 수도 없이 제공했던 말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너 괜찮아?”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두 아이를 키우고, 같은 회사를 다니는 우리 부부가 집 안에서 '나만의 작은 방'을 가지기엔 무리다. 그래서 집 안에서 각자만의 치타델레를 만드는 게 필요할 텐데, 보이차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우리에겐 나름의 치타델레가 아닐까 싶다. 홀로 머물진 않아도, 차를 마시는 공간은 우리 부부가 따로, 혹은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차 한 잔에 우리의 마음을 연결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요즘 우리 부부의 관심사는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유명하다는 곳에 가거나, 근사한 곳에서 쇼핑을 하는 대신 찻집을 찾아 즐겨찾기 하고, 다회가 열리는 곳을 예약해 함께 가본다. 이것만으로도 호화로운 취미라며 좋아하는 우리다. 오늘도 차를 마시며 놀고, 쉬고, 서로의 안부를 챙긴다. 오늘, 괜찮냐고. 괜찮을 거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