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무엇이 달라졌나
장마가 시작됐다. 밤새 비가 내렸다. 꿉꿉하고 습한 기운이 느껴지니 진짜 여름이 됐구나 싶다.
월요일 아침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어른도 다를 것이 없다. 주말에 바삐 보낸 탓에 다들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나도 눈 뜨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세 남자를 각자의 위치로 보내고 나야 나의 일상을 시작할 수 있다.
오늘로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26일이 되었다.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기분 탓일까. 그 순간 구글 포토가 1년 전 우리 가족의 사진을 보내줬다. 1년 전, 우리는 인제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고작 1년 전인데도 아이들은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사진만 봐도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진 속 남편은 그대로였다. 이 사람은 도대체 늙지를 않는 건가. 나이 50인데도 나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곧잘 듣는 사람이니 그럴 만하다.
사진을 남편에게 보여주자, 대뜸 이런다.
애들 많이 컸네? 나는 그대 로고.
근데 넌 팍 늙었어. 아픈 사람 같아.
남편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기분이 상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속상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자리를 피했다. 아마 남편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푹 쉬라고 휴직을 시작한 건데, 회사만 가지 않을 뿐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비슷한 것 같아 보였을 테니까.
지난 1년 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보정앱을 쓰지 않고 찍은 사진인데도 얼굴이 밝아보였다. 사진 속 내 모습이 괜찮아 보이는 건, 여행지에서 아침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날 어느 때보다도 잠을 푹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났던 것 같다. 강원도의 맑은 공기 덕분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난달까지 1년 간 회사에서 내 몸을, 마음까지 혹사시켰다는 것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등교하고, 남편도 출근하고 난 뒤 거울을 들여다봤다. 눈물이 났다. 거울 속의 나는 내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정말 아픈 사람처럼 활기가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거울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그때 라디오에서 조수미의 '바람이 머무는 날'이 흘러나왔다. 분명 아는 곡이고, 자주 들었는데도 오늘은 다르게 들렸다. 거울 속 늙고 지친 모습이 친정 엄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머무는 날엔 엄마 목소리 귀에 울려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어둠이 깊어질 때면 엄마 얼굴을 그려보네 거울 앞에 서서 미소 지으면 바라보는 모습 어쩜 이리 닮았는지
- 조수미, '바람이 머무는 날' 중에서
아침에 노래를 듣다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울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웃어봤다. 그래, 이왕이면 웃자.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도 지금은 웃어보자. 내 나이답게 꾸미기도 하고, 활기를 되찾아보자. 그 누가 '요즘 너무 늙어 보인다'라고 말하더라도 씩 웃어 보이자. 나답게 잘 늙어가고 있다고 말해주자. 1년 전보다 지금의 나는 더 무르익고, 깊어졌을 테니까. 내년 이 맘때쯤에 나는 더 성숙해져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