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예쁘고, 하지 않아도 예쁘다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 나태주, '오늘의 꽃'
토요일 아침이면 중1 큰 아이와 집 앞 카페에 온다.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몇 년째 학습지를 하고 있는데, 이 시간이면 학습지를 몽땅 챙겨 엄마와 집 밖으로 나온다. 별 것 아닌 일상이지만, 우리 둘 다 이 시간을 기다린다. 함께 앉아 있지만 각자만의 시간에 빠져들기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네 카페 한 곳을 정해 쭉 다니지 않고, 곳곳을 투어하고 있다. 이것도 우리 두 사람의 성향상 맞다. 집에서 공부해도 충분할 텐데, 아이는 밖으로 나오려고만 한다. 이런 걸 보면 엄마의 유전자를 가진 게 분명하다. 나는 집보다 바깥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음악 선곡이 좋고, 의자와 테이블이 편안한 곳, 커피를 마시지 않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음료가 있는 곳,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도 테이블 여유가 있는 곳... 나름 까다롭게 따져 자리를 잡는다. 이 과정을 즐긴다. 그리곤 두 시간 정도를 머문다.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엄마, 오늘은 엄마가 꽃처럼 예뻐요.
카페 곳곳에 나태주 시인의 시구가 적혀있기에 눈여겨봤는데 아이도 읽었나 보다. 공부를 즐기는 아이가 아니지만, 토요일 아침에 숙제하자고 하는 아이가 예뻐 보였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아이가 먼저 말해줘 놀랐다. 요즘 출근을 하지 않아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챙겨 입지 않아 별로였을텐데, 빈 말이라도 엄마를 웃게 하려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엄마가 립스틱도 안 발랐구나. 얼른 발라야겠다!
숙제를 해도 예쁘고, 하지 않아도 예쁘다.
밥을 잘 먹어도 예쁘고, 먹지 않아도 예쁘다.
엄마 말을 잘 들어도 예쁘고, 듣지 않아도 예쁘다.
동생이랑 잘 놀아줘도 예쁘고, 혼자 너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도 예쁘다.
뭘 해도 예쁘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시간 여유가 생기니 내 마음에도 빈틈이 생긴다. 여백이 생기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아이들의 많은 것들이 보인다. 자꾸만 아이들에게 조건을 달고 있는 내가 보였다. 공부를 잘하면, 말을 잘 들으면 더 예뻐해 줘야지가 아니지 않나. 아이들은 존재 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쁨이다. 조건을 채워야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미안해졌다. 그동안 조건만 보고 따지려 했던 못난 엄마라서 말이다.
얼굴이 까칠한 나도 꽃이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두 아이들도,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아빠도 모두가 꽃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뭘 해도 예쁘다고 해주는 하루로 보내자. 그저 곁에 있어만 줘도 충분한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