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대화를 시작했다.

[부부]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미지근한 물로 샤워 후 선풍기 앞에 앉으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난다. 이때 맥주를 생각하는 건 본능이다. 맥주를 따를 때 부풀어 오르는 거품들은 마치 피로와 더위에 짓눌린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 같다. 또 미세한 탄산이 목구멍을 간지럽히며 넘어 갈 땐 지친 세포들을 깨워준다. 본능에 빠져있는 순간 이성도 진격해 온다. 이성은 맥주를 마신 뒤를 떠올린다. 다음날 부은 얼굴, 더부룩한 배, 늘어난 옆구리 살 등 마시면 안 되는 수 십 가지 이유로 땅따먹기 하듯 본능을 덮어온다. 둘 사이 고민이 오고가지만 손은 이미 냉장고 문을 열고 있다. 눈도 빠르게 안주를 찾고 있다. 본능은 본능적으로 이성으로부터 맥주를 지켜낸다. 본능도 이성에게 미안했는지 본능에 충실한 합리화를 만들어 낸다. 합리화로 맥주를 마시는 죄책감을 희석시켜 본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 맥주는 없다.’ 이성이 차지한 뇌를 합리화 꾸며낸 의지로 회유시켜 놓는다. 이성을 잠재운 본능에 건배하며 한 모금을 넘긴다.


아내도 맥주를 좋아한다. 아내는 맥주를 마살 때 이성을 마비시킨다. 본능으로만 맥주를 영접한다. 맥주는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내만의 의식을 완성해 주는 성수와 같다. 아내에게 맥주는 몸속에서 터지는 탄산과 함께 하루 동안 일과 육아로 받은 스트레스를 씻겨 내 준다. 국내 맥주를 섭렵 후 침체기가 찾아왔었다. 때마침 수입맥주가 구원등판 했다. 수입맥주가 탁원한 제구력을 선보이면 소비자에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침체된 아내에게 한 줄기 광명이었다. 아내도 열심히 맥주 맛을 음미했다. 편의점 골라 담아 4캔 만 원을 최애한다. 다양한 시도 끝에 최종 간택을 받은 맥주만이 아내의 손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최적의 거품을 내는 전용 잔, 입맛을 살려주는 안주, 가장 목 넘김이 좋은 최적의 온도까지 심혈을 기울인다. 아내의 맥주 사랑은 끝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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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부부는 맥주를 떠나보내려 한다. 우리 보다 더 사랑해줄 그들에게로 보내려 한다. 둘 중 누가 먼저가 없었다. 대화 중 자연스레 결정했다. 내가 먼저 끊겠다고 한 적은 있지만 아내의 동의가 없으니 흐지부지 되 버렸었다. 아내는 먼저 끊겠다고 한 적이 없다. 끊어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 그랬던 우리가 잔득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한 순간 활짝 피어나듯 아무런 저항 없이 결정했다. 지난 주말 십 수 년 함께 한 정이 아쉬워 그들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기꺼이 예의를 갖춰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렵게 결정한 만큼 의미 있는 안주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활어회를 사랑한다.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 집 앞 횟집에 주문을 넣었다. 최대한 정성들여 손질해 줄 것을 부탁했다. 회 본연의 맛을 희석시키는 밑반찬은 거부했다. 이 또한 그들을 떠나보내는 예의라 생각했다. 정갈하게 차려진 회 한 상과 냉장고를 지키던 맥주 두 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 손님으로 소주 두 병을 모셔왔다. 이제 그들을 떠나보낼 의식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경건한 마음으로 각자의 잔을 채웠다. 소주 첫 잔을 따를 때만 들을 수 있는 경쾌한 소리가 있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또, 한 번 밖에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방법을 뒤이어 적어 놓았다. ‘오직 새로운 병의 첫 잔을 따를 때만 나는 소리라는 점에서 애달픈 구석도 있다. 먼저 한 병을 따서 첫 잔을 따랐다. 다른 병을 다서 또 첫 잔을 따랐다. 똘똘똘똘 소리가 두 번 연속 스쳐 갔다. 나는 잔을 얼른 비운 다음 나의 소주병A의 술을 친구의 소주병B에 부어 원래대로 채워 넣었다. 그렇게 꽉 채워진 소주병B를 기울여 나의 잔에 따랐고... 똘똘똘똘똘똘똘똘. 났다! 소리가. 소리가 났다! 이렇게 ’만들어낸‘ 소리는 또 왜 이리 유난히 아름다운지.’

나도 이 글을 읽고부터 첫 잔이 들려주는 소리에 빠졌다. 매번 첫 잔이 들려주는 경쾌한 소리를 귀에 새긴 뒤 경건해진 마음으로 남은 소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의미 깊은 첫 잔을 아내에게 양보했다. 우리 둘의 마음을 정화해 주는 소리와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첫 잔을 몸 속 깊은 곳으로 흘려보냈다. 탱글탱글한 회 한 조각을 막혔던 오감을 뚫어 주는 고추냉이가 녹아든 초고추장에 묻혀 입 안 남아 있는 쓴 맛을 달랬다. 소주 한 잔에 회 두 점의 원칙을 지키며 병을 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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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끊겠다며 시작된 술자리였다. 사실 집에서 아내와 마시는 술자리는 불편했었다. 불과 두어 달 전만해도 기분 좋게 시작된 술자리의 끝은 감정싸움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며칠 간 냉전을 이어가다 은근 슬쩍 예전 일상으로 돌아갔고, 마치 볼일 보고 뒤처리 안한 것 같은 찝찝함을 늘 갔고 있었다. 솔직하게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싫었다. 결혼 후 10년 동안 맞벌이를 했다. 그 중 7년간은 큰아이를 돌봐 준 장모님과 함께 지냈다. 집에서 마주치는 시간은 자연스레 조심하게 되었다. 7년간은 큰 싸움 없이 지냈다. 생각해보면 7년간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지낼 내가 불편할 걸 짐작해 더 조심했을 수 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아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쩌면 새로 산 가전에 붙은 보호필름처럼 진심을 가리고 덮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 장모님이 댁으로 내려가신 뒤 아내는 퇴직 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큰 아이를 위한 결정이었다. 20여 년을 달린 뒤 찾아온 휴식은 매일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의 긴장감이 풀리듯 편안했다고 한다. 아내는 마음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내가 다니던 직장에 문제가 생기며 아내를 불안에 빠지게 했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부담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또 몇 해를 눈치 보며 지내게 됐다. 10여 년 서로를 향한 앙금은 폭약이 쌓인 화약고였다. 그런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게 책이었다.


2018년 1월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목적 없이 시작했다. 아내는 내 행동을 의아해 했다. 결혼 후 책 읽는 모습을, 책에 대한 관심도 없는 나라 생각했었다. 얼마나 가겠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한 달 두 달 매일 책 읽는 모습을 지켜봤다. 퇴근 후 책만 읽는 내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꾸준히 읽는 모습을 보이면 알아서 이해할 거라 잘못 생각했었다. 아이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거란 건 착각이었다. 아이들도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책을 읽기 전에도 말이 없었는데 책을 핑계로 더 말이 없었고, 책을 보는 모습이 싫었다고 했다. 작년 겨울 아내는 폭발했다. 나도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내에게 섭섭함을 드러냈다. 모래를 힘껏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듯 둘 사이 쌓였던 감정의 알갱이들이 쉴새없이 새어 나왔다. 독을 잔득 품은 알갱이들은 서로에게 쌓였고 결국 ‘이혼’이 작은 탄식으로 새어나왔다.

며칠 뒤 늦은 밤 문자메세지 화면이 터질 만큼 악감정을 담은 글을 주고받고 있었다. 참다못한 아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몇 단어를 남겼다.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이게 아니었는데. 이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집에 도착했지만 아내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실감났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아내의 감정을 먼저 챙겨야 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단 동네로 찾아 나섰다. 버스 정류자, 지하철 승강장, 불이 켜진 카페 눈에 띄는 곳은 다 찾아봤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몸에선 땀이 나고 있었다. 땀이 날수록 정신은 맑아졌다.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현실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싸움이고 나발이고 주저앉고 싶었다. 아내의 존재를 망각했던 내 자신이 미웠다. 쓴 말을 뱉어낸 나를 원망했다. 뱉어 낸 말을 주워 담지 못한다는 게 후회스러웠다. 나의 자책과 후회가 들렸는지 잠시 후 아내가 돌아왔다. 그날 나도 아내도 별 말없이 그렇게 마무리했다. 내게는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내가 놓치고 있는 걸 생각했다. 아내는 대단한 걸 원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무뚝뚝하고 친절하지 못한 내 탓으로 지루한 감정소모를 이어왔다. 책만 읽는 내 자신을 무능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다. 헛된 꿈만 좇는 건 아닌지 불안한 적도 있었다. 생각에 거기에 미치니 아내에게 더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탓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었다. 항상 믿고 기다려주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더 걱정했다.


우리는 거친 물살에 급류타기 중이었다. 나에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을 키웠다. 서로에 대한 믿음만이 급류를 해쳐나가게 해준다. 아내는 나를 믿고 있었다. 내가 흔들리면 아내도 흔들린다.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했고, 책이 중심을 잡아주었다. 아내와 싸워도, 일이 안 풀려도, 회사일이 힘들어도 책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지금 급류에서 우리를 구해줄 건 책 뿐이라 믿었다. 나의 행동에 진정성을 본 아내도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아내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부터 대화가 조금씩 늘었다. 읽고 싶은 책 이야기도 하고, 같이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지난 주말 금주를 위한 술자리가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12년 동안 묵혀 두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글사세 마지막 모임과 함께 한 문우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내는 10주 동안 성실히 최선을 다 한 내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리곤 물었다.

“어떤 점이 제일 좋았어?”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상대방, 특히 배우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

“어떤 부분에서?”

“10주 동안 매일 글을 쓰고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던 건 당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주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 그런 생각을 글로도 써봤고.”

약간의 술기운을 빌린 덕분에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아내도 진심으로 받아줬다. 12년간 크고 작은 불신으로 급류를 타던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책을 매개로 흔들리던 배의 중심을 잡아가게 되었다. 12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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