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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28. 2024

아내의 갱년기, 삼겹살로 극복하는 중

"할 일 있으면 나가서 하고 와."

32시간 만에 얼굴 보며 아내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손으로 빨래를 개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말했다. 황당했다. 외박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설명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코치 모임과 천안에서 책 쓰기 수업 오프 모임을 하기로 했다고. 아내도 그때는 별 말 없었다. 왜 가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고 여겼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입을 닫은 아내 옆에서 이말 저말 던졌다.

"당신도 혼자 나갔다 올래? 아니면 같이 나갈까?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됐어. 괜찮으니까 할 일 있으면 나갔다 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을 걸었다가는 무슨 말이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가만히 옆에 앉아 TV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내는 개켜놓은 빨래를 안방으로 아이들 방으로 욕실로 자리를 찾아줬다. 그러는 동안 서로 눈도 안 마주쳤다. 안방에 들어간 아내가 나오지 않았다. 나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사이 수학 학원에서 큰딸이 돌아왔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라고 했다. 가기 전 수학 문제 은행 사이트에서 문제지를 출력했다. 코인이 부족하다고 다시 충전해 줬다. 여러 장을 출력하고 나서 메고 왔던 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큰딸이 나가고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TV를 껐다.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었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남겼다. 1시간 때웠다. 5시였다. 7시에 문을 닫는 헬스장에 지금쯤 가면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올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으로 안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이불도 안 덮고 웅크린 채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다. 앞발로 그 옆을 지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잠결이라도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들릴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잠이 깨도 어쩔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필요했다.


이틀 만에 운동하러 갔다. 스트레칭 후 20분 동안 다리 운동을 했다. 다시 10분 동안 플랭크, 윗몸일으키기, 마운틴 클라이머 등 몇 가지 운동을 숨이 찰 정도로 했다. 이마에 땀이 살짝 비쳤다. 몸이 긴장한 상태를 유지한 채 트레이드밀 위에 섰다. 출발은 '6'으로 시작했다. 곧바로 '8'로 올렸다. 그 속도로 2킬로미터를 달렸다. 다시 '10'으로 올렸고 1킬로미터를 더 달렸다. 20분 동안 3.4킬로미터 달렸다. 수건과 운동복이 땀으로 젖었다. 씻었다.


씻고 나오니 아내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운동 갔어? 아까는 짜증 내서 미안해.'

바로 답장 보냈다.

'오랜만에 솥뚜껑 가서 삼겹살 한 판 할까?'

아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러자고 했다. 나도 토 달지 않고 두 딸에게 연락했다. 스터디카페 4시간 권을 끊은 큰딸이 8시에 끝난다고 해서 그때 가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둘째는 안 들어왔냐고 물으며 거실 바닥에 앉았다. 아내는 둘째는 아직 친구집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대답을 듣고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가 '틈만 나면'이라는 프로그램에 시선을 멈췄다. 서로의 눈은 TV에 고정한 채 간간히 웃었다.


TV를 보는 내내 낮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 안 했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불쑥불쑥 목덜미에서 땀이 난다고 했다. 서늘한 날씨에도 덥다고 했다. 또 갑작스레 짜증이 올라온다고도 했다. 갱년기 증상이었다. 거기에 대학원 과제와 실습에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짜증이 났었던 것 같다. 거기에 대놓고 내가 따지고 들었다면 아마 상상하기 싫은 결말로 이어졌을 테다. 다행이다. 잠자코 있어서. 16년을 같이 사는 동안 눈치도 제법 늘었다. 내 나름 마음의 여유도 생긴 터라 아마도 아내의 행동을 이해하기 전에 잠자코 두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갱년기를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이해한다고 말하겠는가. 그저 아내의 반응을 지켜보고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는 게 유일한 처세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삼겹살이 있어서. 오랜만에 식당에 가서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었다. 아내는 맥주 한 병으로 짜증을 풀어낸 것 같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삼겹살 먹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이 아내도 괴롭고 나도 불편할 테니 말이다. 갱년기, 아내도 나도 겪어보지 않았다. 머지않아 나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미 시작된 아내의 갱년기를 공부하면 나의 갱년기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공부하면 못할 게 없다. 아니면 그사이 돈이라도 왕창 벌어야겠다. 삼겹살, 한우, 회 등으로 기분 전환할 수 있게 말이다. 나도 아내도 음식에는 진심이다. 먹을 줄 몰라서 안 먹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것뿐이다.

'맛있게 먹으며 0칼로리, 더 맛있게 먹으면 갱년기 극복'  





https://docs.google.com/forms/d/1qFfd2CX6opctG8sKVnfcsRxD8Ynq-5xoHn4Foqg4iNA/edit?usp=drives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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