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Paris Gare du Nord' (파리 북역)
그날 파리 지하철 첫 차에 몸을 싣고 북역을 향했다. 누가 봐도 여행객 같은 행색으로 표를 사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어설픈 영어와 전혀 불어 같지 않는 발음 몇 마디로 목적지를 말한다. 다행히 내 말을 이해했나 보다. 어렵지 않게 표를 손에 쥐었다.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Gare du Longchamp' (실제로는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두 달 일정으로 배낭여행 중이었다. 파리를 시작으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돌아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들렸다. 여행 중 만난 분이 소개해준 민박집에서 뜻밖의 횡재를 했다. 그곳엔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자신이 가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적어 놓는 노트였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라 독특한 아이디어였다. 여는 민박집에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처럼 건축을 전공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여행자가 남겨 놓은 정보가 눈길을 끌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꼬르뷔제가 설계한 롱샹성당에 대한 정보였다. 그곳을 찾아갈 수 있는 교통 정보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롱샹성당은 독특한 외관과 신성한 이미지로 인해 건축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많은 공부가 되는 건물이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 언어 중 곡선의 미학 정점을 찍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만 동경하던 건물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건 흥분 그 자체였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음 날 새벽길을 나섰다.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롱샹에 가까울수록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비가 왔는지 이곳을 찾는 이가 없었다. 매표소 직원도 이런 날 왜 왔는지 의아하게 보는 눈치다. 어쩌면 나에겐 축복 같은 날이다. 아무런 방해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은 오르막길을 오르니 잘 정돈된 잔디 위로 유려한 곡선의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보는 사람마다 여러 형태가 그려진다고 한다. 나처럼 배를 연상하기도 하고, 비행기 날개를 연상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이미지가 주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각기 다른 모습이다. 외관의 하이라이트는 육중한 지붕 구조물이 마치 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벽과 지붕 사이의 틈이다. 사진으로 볼 때와 눈으로 직접 보며 느껴지는 감동은 비교할 수 없었다. 이 건물 내부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종교 건물이 갖는 신성한 이미지를 딱딱하고 복잡한 형태 언어가 아닌 친숙하고 편안함으로 풀어내고 있다. 단순한 공간 구성, 다양한 크기의 창문이 주는 리듬감, 화려하지 않은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재료 자체의 질감을 살린 마감재가 친숙함을 더해 주었다. 이래서 ‘거장’이란 칭호가 붙여진 것 같았다. 내부 공간의 압권은 기도실이었다. 빛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신성한 이미지의 극치라 생각했다. 원통형의 공간에 서면 ‘나’란 존재는 한 없이 작아 보인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벽에 부딪히고, 부딪힌 빛이 거친 벽면을 타고 내 머리 위로 흐르면 마치 부드러운 손길이 어루만지는 듯 착각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서면 없던 죄도 털어놓게 될 것 같은 신비로움이 들었다. 혼자였기에 최대한 천천히 많은 걸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공간의 크기가 작아 오랜 시간 머무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본 것 같았다. 더 이상 시간 보낼 곳이 없어 보였다. 안타까운 건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까지는 세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워낙 시골 동네라 가 볼 곳도 없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목적은 이 교회만을 보기 위해 오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이 교회의 다른 이름은 순례자를 위한 교회라고도 한다. 순례자에겐 더없이 의미 있는 공간일 될 수 있을 것 같다.
파리까지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역까지 걷기로 했다. 올 때는 열차를 갈아타고 왔던 길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남은 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군대에서 행군도 했는데 이 정도는 가뿐할 거라 짐작했다. 짐작이 틀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역처럼 생긴 곳은 안 나왔다. 다섯 시간을 걸은 것 같다. 어둡고 차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걸을 땐 두려웠다. 자칫 타지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두려움에 싸여 도착했다. 두 시쯤 출발해서 일곱 시가 다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행히 파리 가는 열차는 탈 수 있었다. 다시 북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쯤이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