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영국은 춥진 않았다. 두꺼운 외투를 챙겨갔지만 배낭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춥진 않았지만 화창하지도 않았다. 영국은 흐린 날씨로 유명하다. 이런 날씨 탓에 트랜치 코트를 많이 입는다고 한다. 맑은 날 보다 흐린 날이 많고 흐린 날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우산 대신 트랜치 코트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나처럼 며 칠 머물다 가는 여행객은 현지인의 날씨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여행하는 동안 흐린 날이 이어지면 운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여행이 아닌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흐린 날이 이어지면 맑은 날에 대한 갈증이 자연스레 생길 것 같다. 며 칠 있는 동안 유난히 화창한 날이 하루 있었다. 그날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철과 도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들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바리케이트가 열린 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과장된 표현이라 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선 이날만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햇볕을 기다리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요즘이다. 몇 주째 이어진 비로 맑은 하늘을 본 기억이 가물하다. 매일 쏟아지는 비는 트랜치 코트로 감당이 안 된다. 있는 힘을 다해 내리는 비는 우산마저 뚫고 들 기세다. 깔끔하게 차려 입고 나와도 몇 발자국 만에 옷은 만신창이가 된다. 비와 한 바탕 씨름하고 출근하면 신발은 물놀이용 워터슈즈가 되어 있다. 신발 안에는 전의를 상실하고 축 늘어진 양말은 가엾기만 하다. 머리는 더 가관이다. 잔득 힘을 주고 집을 나서도 넘치는 습기로 인해 제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맑은 날도 덥지만 비 오는 날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땀과 빗물에 젖은 몸을 씻어내고 나면 쌓이는 수건도 골칫거리다. 세탁기는 연일 돌아가지만 마르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집안 곳곳에 스민 습기를 없애기 위해 선풍기를 돌려도 방바닥의 끈적거림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돌리지만 이내 전기료 압박에 떨리는 손은 이미 전원 버튼에 올라가 있다. 학기 중인지 방학 중인지 경계가 모호한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몇 달째 감금 비슷한 생활에 연일 이어진 비는 현관문마저 열지 못하게 한다.
“집에 있으며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책 읽고 부족한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에요.”
라는 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유일하게 암기 하고 있는 건 티브이 편성표 인 것 같다. 티브이가 질릴 때면 유튜브나 게임이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이마저 지루해 질 때면 마지못해 학습지 몇 장 풀며 잠시 학생으로 돌아간다. 몸을 안 움직여도 때만 되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먹는 양은 활동량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입맛은 늘 한결같다. 그러니 늘어나는 건 살 밖에 없는 것 같다.
많은 비로 인해 일상에 불편을 겪는 요즘이다. 옷이 젖고 머리가 망가지고 차가 밀리는 건 잠깐의 불편일 뿐이다. 살던 집이 물에 잠기고, 정성들인 농작물이 떠내려가고,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피해를 입은 분들은 그때의 시간에 멈춰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다. 함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다양한 도움의 손길이 닿아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 없기만 하다. 올 한 해는 정말 다양한 일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일부가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시련이 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같이’의 힘이 절실할 것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보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