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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5. 2024

일기와 에세이는 이것 차이

"어제 보고 온 사무실 사진입니다. 빈 사무실이 거의 없더라고요. 월세 150만 원인 곳은 깨끗하고 냉난방기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월세 70만 원짜리도 봤는데, 내부 손도 보고 냉난방기도 설치해야겠더라고요."

"수고했어. 현장 소장한테 전달해 줘. 오늘은 잠실에 빈 사무실 있는지 알아봐라."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또 외근이다. 요즘 들어 나갈 일이 드물었다. 일부러 일을 만들어 나가면 눈치 보인다. 알아서 일을 만들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오전 업무 내내 손끝이 가볍다. 외근 중인 나를 다시 찾지 않게 필요한 일을 처리해 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슬슬 나갈 준비 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혼자 먹는 나는 다른 직원들이 먹을 도시락이 배달 온 걸 보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내가 먹는 점심은 저크버그의 회색 면 티와 같다. 아무 고민 없이 늘 정해진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이다. 벌써 4년째 같은 매장 같은 메뉴를 먹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속전속결로 내 앞에 차려진다. 오늘도 당연한 기대를 갖고 매장 문을 열었다. 웬걸,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서있다. 4년 동안 다녔지만 낯선 모습이다. 맨 뒤에 섰다. 일찍 먹기는 그른 것 같다. 그때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들릴 듯 말 듯하게 앉아 있으라고 한다. 바쁠 땐 기다려 주는 게 사장님 편의를 봐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늦게 먹을 각오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지난달 독서 기록을 정리했다. 앱을 열고 읽었던 책 제목을 입력했다. 첫 번째 책을 입력할 찰나, 왼쪽으로 음식이 담긴 쟁반이 쓱 들어온다. 사장님이었다. 늘 먹던 걸로 한 그릇 담겼다. 주문이 밀린 탓에 혹여나 기다릴까 싶어 미리 만들어 내줬다. 뜻밖의 호의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입씩 먹었다. 먹는 동안에도 주방은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다 먹기까지 15분 남짓 걸렸다. 빈 그릇은 그 자리에 두라는 말에 서둘러 인사를 남기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날은 나도 보답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주문이 많아도 기다리지 않게 챙겨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늘 두세 가지 토핑을 서비스로 얹어준다. 8,900원을 계산하지만 실제로는 13,000원 이상을 먹는다. 그런 탓에 나도 한 달에 두세 번 간식으로 조공한다. 만두, 꽈배기, 다양한 종류의 빵 등 간식거리를 사다 준다. 사장님과 직원, 두 명이 먹을 양을 준비한다. 내가 받은 거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이렇게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게 맞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장님도 늘 감사해하며 받아준다.



어제 있었던 일을 적었습니다. 저에게는 자주 반복된 일상입니다. 저마다 매일 비슷비슷한 하루를 삽니다. 그런 하루를 기록하는 게 일기입니다. 일기는 나만 보려고 씁니다. 그렇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게 보통입니다. 다듬거나 수정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쓰고 남깁니다. 그렇게 쌓인 글이 곧 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용기부터 내야 할 겁니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니까요. 하지만 용기 내면 얻는 게 많습니다. 얻는 것 때문에 매일 쓰게 되기도 하고요. 다음으로 필요한 게 내 글을 읽은 독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입니다. 일기에는 굳이 메시지를 담을 필요 없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내 글을 남에게 보이는 건 다릅니다. 내 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야 글로써 가치가 생깁니다.


앞에 적은 글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으면 좋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저 같은 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으세요?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배려가 배려를 낳는다. 4년 단골에 대한 애정도 있었겠지만, 주문이 잔뜩 밀린 상황에서도 기다릴 나를 위해 기꺼이 먼저 음식을 준비해 줬다. 분명 먼저 와서 기다리는 손님도 있었다. 사장님은 나를 위해 그들의 눈치를 기꺼이 받아냈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 점심에는 사장님 마음이 토핑으로 더해졌다. 그렇다면 나도 기꺼이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보답하는 게 맞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한숨 돌릴 때 내가 사준 간식을 먹으며 나의 배려에 감사해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이게 배려가 배려를 낳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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