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갖고 싶은 꿈이, 꿈이 되어간다

[집]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서울에서 자리 잡겠다고 이사 갔던 친구가 살던 집을 팔았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이사를 준비해 왔다. 남가좌동에 사는 친구는 근처 아파트 전세를 알아봤다고 한다. 30평 대 전세가 7-8억을 호가 한다며 좌절했다. 사는 집을 팔아도 전세로 가긴 어렵다고 했다. 눈을 낮춰 오랜 된 집을 알아봐도 가격대비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궁리 끝에 다시 일산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같은 돈이면 10년 정도 된 4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10년 넘게 일산에 살아본 결과 아이들 키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로 출퇴근이 조금 힘든 걸 제외하면 일산 안에서의 삶은 만족스럽다. 일산이 개발 된지 40여년 지났다. 계획도시답게 잘 갖춰져 있다. 공원, 병원, 대형마트, 학교, 상업시설, 지하철 등이 근접해 있어 생활에 불편이 적다. 살아본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다. 일산으로 이사 온 사람들은 웬만해서 다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일산에 자리 잡은 건 12년 전이다. 신혼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살림살이를 포기하고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고 싶었다. 나는 집에 대한 집착이 있다. 서른세 살 까지 30여회 이사를 했었다. 일 년에 한 번 꼴이었다. 다섯 식구 세 끼 밥 해결하기도 허덕일 정도로 가진 게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도 없는 집안은 아니었다고 했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할아버지 때의 몰락이 우리도 비켜가지 않았다. 전해 듣기론 1960년 대 수행기사와 보모를 둔 마당 딸린 2층 집에 살았다고 한다. 을지로 에서 인쇄업으로 크게 성공하셨지만 친구의 배신으로 전 재산을 날렸고, 그 충격에 할아버지는 단명하셨다고 했다. 그때 이후 가세가 기울고 전형적인 흙 수저 집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그때 할아버지가 건재 하셨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겠지 라고 생각해 봤자 헛꿈이다. 살아 계셨을지언정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두 분은 양가로부터 단 1원의 도움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결혼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 셋을 건사하기 위해 안 해본 것 없이 발버둥을 쳐도 단칸방을 벗어나긴 힘들었다.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봤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두 집에 나눠 살기도 했고, 2층짜리 단독주택에 1,2층 방 한 칸씩 나눠 살기도 했고, 언제 철거 될지 모르는 쓰러지기 직전의 집에도 살아봤다. 그때는 어느 집을 가도 천정엔 쥐들이 자기 영역임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1980년대는 넘쳐나는 쥐로 인해 국가적인 캠페인까지 할 정도였다. 우리와 그들은 활동시간이 반대였다. 밤만 되면 우다다닥 이리저리 옮겨가는 소리가 활기차게 들렸었다. 어디서 먹을 걸 얻는지 나날이 살이 올라 커지는 발자국 소리에 잠을 설치기 일수였다. 시간이 흐르고 몇 번 더 집을 옮기며 쥐와의 동거는 없어졌다. 그래도 독특한 형태의 집은 벗어나지 못했다. 한 번은 마당이 넓은 단독 주택의 차고를 개조한 집에 살았었다. 차고는 셔터가 문이다. 셔터를 열고 차가 드나든다. 차가 아닌 우리도 셔터를 열고 드나들어야 했다. 평일엔 새벽 6시면 집을 나섰다. 셔터 여는 소리도 싫었고 사람과 마주치는 것도 싫었다. 수업이 끝나도 일찍 오지 않았다. 어두워 질 때까지 밖에서 보냈다. 주말엔 햇볕도 안 드는 집 안에서 하루 종일 보냈다. 셔터 문 여는 소리가 싫었다. 사글세였다. 이런 집은 1년 만 살아도 좋았겠지만, 집주인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2년 넘게 살 수 있었다.


이사는 자주 했지만 전학은 딱 한 번 했었다. 근데 그 한 번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남에서 서울로 전학 왔고, 같은 반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랬다. 그래서 결혼하며 결심했던 한 가지는 적어도 내 아이에겐 집에 대한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았다. 또 한 동네 오래 살며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싶었다. 전학은 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 결혼 후 지금까지 잘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피해갈 수 없는 게 있다. 아이들끼리 집은 여전히 비교 대상이다. 작은 아이 친구가 얼마 전 길 건너 새 아파트로 이사 갔다. 친구 집에 초대 받아 갔다 온 날부터 틈만 나면 그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조른다. 아직 어리니 그러려니 하고 만다. 속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아빠도 이사 가고 싶지만 네가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단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가격은 두 배란다. 이 집을 팔고 대출을 아무리 많이 끌어와도 갈 수 없는 곳이란다.’


누구나 넓고 깨끗한 집을 꿈꾼다. 그 안에서 안정과 행복을 바란다. 너무도 소박한 꿈이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 하게 살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할 행복이 어느새 꿈이 되어버렸다. 끝을 알 수 없이 치솟는 집값에 무릎을 꿇은 지 오래다. 그저 어디까지 올라가나 지켜볼 뿐이다. 앞서 이사를 준비 중인 친구도 여러 요인을 감안해 서울에 살길 바랐다. 어쩌면 서울만큼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도 드물다. 교통, 편의시설, 문화시설, 일자리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인다.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며 키울 수 있다면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잠깐 『사람 사전』을 쓴 정철 작가가 서울을 표현 한 글을 옮겨 적어보면,


“순천 가서 얼굴 자랑하지 말고,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니, 있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서울 가서 얼굴 자랑하지 말고, 서울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서울 가서 돈 자랑하지 마라. 모든 걸 다 가져서 한없이 슬픈 도시.”


모든 걸 다 가진 게 축복은 아닌 것 같다. 서울에 제일 필요한 건 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곳 같다.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여유를 버려야 제 속도에 맞춰 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물론 서울을 고집하는 이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도 내가 사는 일산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서울이 직장 이다보니 출퇴근도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낮 동안 바쁘게 보내고 집에 오면 마음의 여유와 휴식이 필요하다. 내 경우엔 이런 여유를 사는 곳의 주변 환경을 통해 얻게 된다. 제각기 사는 곳에서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하루 중 잠시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 여유를 집이 줄 수도 있고, 집 주변 환경이 줄 수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는 집을 통해, 동네를 통해, 그런 마음의 여유를 얻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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