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출 필요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문제는 직장이었고, 무례한 사람은 상사였다. 대개는 아랫사람이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 상사의 말과 판단이 맞고 틀리고는 나중 문제였다. 못마땅한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묵혀둬야 처신을 잘하는 거라고 배웠다. 나는 배운 대로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상황에서는 내 판단과 선택이 옳았다. 막무가내 자기 합리화 강압을 일삼는 상사를 상사로 모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낮에 사무실을 나왔다.
가까운 정류장에서 제일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낮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맨 뒷자리에 앉아 노선표를 봤다. 갈 만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김포공항.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 시간에 그들은 무얼 하는지 두고 보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걷는 게 좋았고 사람 구경을 즐겼다. 넋 놓고 보고 있으면 머릿속 걱정은 잊고 감정은 사그라 들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때부터 스트레스는 이런 방법으로 풀었던 것 같다. 직장에 매인 몸이라 한동안 낮 시간에 돌아다니는 걸 잊고 지냈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낮의 망중한이었다.
몇 번을 왕복했는 지도 잊었다. 사람 틈 사이를 잰걸음으로 옮겨 다녔다.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신경 쓰다 보니 들끓었던 감정도 어느새 잔잔해졌다. 그제야 다리 아픈 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시선은 사람을 향했다. 보면 볼수록 의문이 생긴다. 평일 낮에 공항을 이용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이 공항에 온 목적은 무엇일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있지는 않을 터다. 사람 수만큼은 사연이 있겠지. 손에 들린 가방에는 짐작할 수 없는 감정도 담겼을 것이다. 개중에는 나처럼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
근심 없어 보이는 표정을 보는 게 불편했다. 이 말은 내 안에 근심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감정이다. 마음에는 근심 걱정이 들어찼는데 내 앞에 그들에게선 근심 걱정은 보이지 않았다. 즐거운 표정을 볼수록 불안은 커졌다.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왜 대책 없이 이곳까지 왔을까?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왜 스스로 불안을 자초했나? 다시 돌아가 고개 한 번 조아리면 끝날 일이다. 일자리, 월급, 가족을 생각하면 당장 돌아가는 게 맞다.
하지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 피하다가 꺼버렸다. 나 좋다고 피하면 편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음은 계속 꺼진 전화기에 가 있었다. 이제라도 전원을 켜서 제일 먼저 걸려오는 전화를 아무 일 없듯 받아야 할까?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마음은 초조해졌다. 퇴근 시간을 넘기고부터 더 불안했다. 이대로 집에 가도 아내는 모른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회사에서 아내에게 전화했을 리 만무하다. 집에 가서 잠자코 자면 오늘은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은?
눈을 떴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옷을 챙겨 입고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지? 이대로 사무실로 가는 게 맞을까? 아니면 오늘도 목적지 없이 다녀야 하나? 피하지 말고 단판을 짓는 게 맞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이대로 다른 직장을 알아볼까? 대책 없이 나왔으니 대책이 생길 리 만무하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나에게 최선은 없다. 애초에 뛰쳐나올 때부터 이미 나는 코너에 몰린 거다. 신나게 두들겨 맞고 다운되든가, 등을 보이고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든가. 어떤 선택이든 이미 승산 없는 싸움이다.
시작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순간의 감정을 누르지 못한 대가였다. 스스로 자초한 불안이었다. 참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다. 참는 것도 미덕이요, 처세이다. 당연한 걸 하지 않았다면 값을 치러야 한다. 그게 상사 앞에서 굴욕일 수도 있고, 또다시 백수가 되거나, 가족에게 무능한 가장이 되는 것일 수 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대가로 마음은 참혹했고, 제때 되돌리지 못한 선택으로 불안을 자초했다. 야속하게 시간은 계속 흘렀다. 시계를 볼 때마다 불안의 크기도 커졌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불안에게 짓눌리고 만다.
며칠 뒤 결단을 내렸다. 아니 결단이 아니라 시간 뒤에 숨었다. 피하고 도망쳤다. 뭉개다 보니 저절로 연락도 끊어졌다. 어쩌면 최악의 선택을 내렸다. 당당하지 못한 태도였다. 내가 옳았다고 확신했지만, 맞서지 않았다. 피하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맞설 용기가 없었다. 맞섰다가 제대로 할 말도 못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터다. 나라는 사람은 그러고 남는다. 비겁했지만 소심한 복수였다. 가족에게 피해는 물론 주변 사람에게 좋지 않은 모습만 남겼다. 직장을 잃었고 불안만 남았다.
불안은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 부당한 상황이라면 할 말을 하든가 잠자코 받아들이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먼저다. 그래야 어떤 식으로든 그 상황이 끝난다. 나처럼 상황을 회피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피할수록 불안만 커진다. 반대로 상황을 마주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면 적어도 불안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불만은 남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때 내가 선택해야 할 태도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았기에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다음 직장을 구하기까지 불안은 덩치를 키웠다. 제 발등 찍은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