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폭싹 속았수다>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학 씨!"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 애순과 악연으로 엮이고 허세와 권위의 끝판왕 캐릭터 부상길이 상대를 위협할 때 입에서 나오는 추임새)
고양이나 곰은 상대를 위협할 때 두 발로 서 상대보다 크게 보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사람도 상대방보다 강해 보이기 위해 큰 목소리로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기도 하지요. 이런 행동 이면에는 동물도 사람도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서 "학 씨!"를 입에 달고 사는 부상길 역시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로 위협을 가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그를 가족은 물론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입니다. 절대 바뀔 것 같지 않던 부상도 나이 들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음을 깨닫게 되지요.
행동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 마음 상태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불안할 때 두 발로 서는 고양이가 그렇고, 짜증 날 때 죄 없는 물건에 화풀이하거나, 우울할 때 사람을 피하는 게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뿐이죠. 감정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봐야 주변 사람만 멀어질 뿐이죠. 또 적당히 숨길 줄 알아야 스스로 통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게 곧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요.
밥 먹을 때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윽박지를 때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밖에서 되는 일이 없었던 떼였습니다. 직장도 변변찮고, 월급도 밀리고, 하는 일도 재미없었습니다. 뭐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게 없었죠. 여러 문제가 섞이며 하루하루가 불안했습니다. 내일이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할 준비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오늘만 버티는 하루살이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런 불안들을 숨기려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되려 큰소리를 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들 달라지는 게 없는데 말이죠.
어떤 식으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바뀌든 상황이 나아지든 말이죠. 나를 바꾸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의지박약이라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직장이든 돈이든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주변 상황이 좋아지길 바랐습니다. 한 마디로 자라지도 않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꼴이었죠. 백 날 천 날 기다린다고 사과가 떨어질까요? 그만큼 무지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은 더 커졌고 행동도 거칠어졌습니다.
부상길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걸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과 맞선을 본 애순과 결혼한 '양관식'을 두고두고 미워했었습니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애순과 번번이 엮이는 게 싫었지만, 그런 애순의 사랑을 받는 관식에게 질투가 났습니다. 그는 관식에 대한 질투가 애순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성실하고 우직하고 넉넉하고 순박한 관식의 성격 때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관식의 태도가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는 이유였습니다. 허세, 권위, 이기심밖에 몰랐던 자신과는 정반대였던 거죠. 그러니 그의 삶을 관통했던 감정은 불안과 외로움이었습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던 과거의 저처럼요.
출처 : 블로그 온유 드라마
부상길은 관식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안으로 변화 즉, 생각이 바뀌면 행동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달라집니다. 습관이 달라지면 인생도 달라질 가능성 높죠. 그런 의미로 극 중 부상길의 변화된 모습이 사뭇 기대됩니다. 비단 부상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도 이제까지 서서히 변화해 오는 중입니다. 생각, 태도, 습관이 달라지면서 주변 환경도 더불어 변하는 중입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가는 곳이 달라지면서 환경에도 변화가 생겼지요. 더는 과거 힘없는 아이들에게 힘을 과시하던 저와는 멀어졌습니다. 그때 가졌던 불안과 점점 멀어졌고요.
사는 동안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불안의 크기는 줄일 수 있습니다. 불안할 때 이를 숨기려고 과장된 몸짓과 거칠 말투 대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바라보는 겁니다. 자신의 상태를 인식할 때 행동과 말투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내 행동과 말투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도 인식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과 말투에 상대는 상처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과장된 몸짓과 말투는 결국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는 꼴입니다. 중요한 건 자신만 모른다는 거죠. 그 말로는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이 바뀌길 기대하는 것 또한 여의치 않습니다. 굳이 둘 중 따지자면 저는 후자가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자신을 바꾸는 건 적어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습니다. 과정은 어렵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가능성 있죠. 말투 하나, 행동 하나부터 바꿔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씩 바뀌다 보면 불안도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행동과 말을 통제하는 자신이라면 불안 또한 얼마든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