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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 취미는요

2025년 6월 11일 세 번째 글

by 김형준

이력서를 쓰지 않은 지 8년 넘었습니다. 지난달에 퇴사했던 직장에 입사할 때 제출했던 이력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사이 이직없이 퇴직 하나 바라보고 버텼습니다. 마지막 이력서에 취미가 영화감상이었을 겁니다. 줄기차게 이직했을 때 취미 칸에 적었던 게 영화감상 또는 독서였더랬죠. 영화는 즐겨 보는 편이었지만, 독서는 고상해 보이려고 일부러 적었던 것 같습니다. 책도 읽지 않았으면서요.


며칠 전 자기소개서를 적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취미 적는 란에 '클래식 음악 감상'과 '달리기'라고 적었습니다. 독서는 밥벌이를 위해 읽다 보니 취미란에 적을 수가 없었죠. 아무튼 직장에 다녔던 8년 동안 취미도 업그레이드가 되었습니다. 마흔이 넘도록 스마트폰 알람으로 울리는 이름 모를 클래식이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그랬던 저가 책에서 배운 대로 클래식을 즐겨 들어왔습니다. 5년 가까이 같은 앨범을 반복해 듣는 중이기는 하지만 나름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했다거나 공연장을 찾아다닌 적은 없습니다.


또 하나 취미로 달리기를 적었습니다. 오십에 가까워지면서 건강을 안 챙길 수 없었습니다. 간헐적 단식을 하고, 헬스장에서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며 몸을 챙겼습니다. 거기에 달리기도 시작해 2년째 꾸준히 달리는 중입니다. 틈틈이 달린 덕분에 하프 마라톤 완주 기록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할 수 있다고 믿으니 완주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달리기는 꾸준히 할 겁니다.

오십이 면 중년입니다. 이때부터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취미나 관심사에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길어지는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서죠. 특히 취미는 삶의 질과도 연결됩니다. 체력이 떨어지고 직장을 갖지 못해 남는 시간이 많아질 때 취미가 그 시간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은 취미가 단순히 취미로 그치지 않습니다. 워낙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 세대이다 보니 특별할 것 없는 취미가 직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달리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경력과 경험, 지식을 갖추면 초보자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글쓰기, 그림, 악기 연주, 연애 상담, 요리, 사진, 등 가능성의 한계가 사라지는 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죠. 특히 부업으로도 얼마든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죠.


8년 전 자기 계발 시작했을 땐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책 만 읽어서는 책 읽는 사람밖에 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관심 가는 것들을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틈틈이 꾸준히 할 수 있는 걸로 말이죠. 그게 달리기였고, 클래식 음악 감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깜냥은 되지 않습니다. 가르치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죠. 이왕 사는 인생 취미로 인해 조금 더 충만해지길 바랐습니다. 노년의 삶이 덜 지루하게 말이죠.


중년은 청춘을 직장에 헌납했습니다. 그 대가로 얼마 되지 않는 연금을 받겠죠. 누구는 월급을 잘 굴려 보다 안정된 수입을 만들어 놨을 수도 있습니다. 노년에는 분명 돈이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취미도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일 테니까요. 돈이 없다고 해도 삶도 삭막하게 살아야 한다는 법 없습니다. 삶의 질은 돈에 영향을 받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도 좌우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되는 시간조차 무미건조하게 지내는 것만큼 마른 낙엽 같은 인생도 없을 것입니다. 생기도 없고 빛깔도 사라진 그런 낙엽이죠. 더 늦기 전에 관심 있는 취미 하나쯤은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하면서 내 시간이 의미와 가치로 채워지면 굳이 누군가 나를 찾지 않아도 인생은 살만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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