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를 읽고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상황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계속됐지만, 그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꿈꿀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더 나은 내일을 꿈꿨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대부분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 대신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그런 태도 때문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비교할 건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400억 원 빚을 떠안게 된다면 어떨까요? 상속을 포기하면 내 일이 아닌 게 됩니다. 하지만 유자와 쓰요시(이 책 저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상속을 선택합니다. 아버지 장례를 준비하면서부터 빚독촉은 시작됩니다. 사업 경험이 없는 아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막막했습니다. 채권자에게 상환을 미뤄달라 부탁하고, 직원이 그만둘까 싶어 싫은 소리도 못합니다. 중간에서 어떻게든 사업을 이어가 보려고 고군분투합니다. 냉정하게 대하는 채권자가 있다면 사정을 봐주고 힘을 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빚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책임지기로 한 이상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정면돌파죠.
저자 또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건 아우슈비츠의 빅터 프랭클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가 져야 할 '책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빚을 성실히 갚겠다는 책임을 선택했습니다. 그를 400억 원 빚으로 버티게 했던 한 단어도 '책임'이었습니다. 빚을 떠안는 것부터 책임을 다하겠다는 태도였습니다. 한 번 정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그의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말이죠.
16년 걸렸지만 그가 책임을 다한 덕분에 400억 원 빚을 갚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았고,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빚을 진 사람'이 아닌 '책임을 진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가 살아낸 시간은 주변에도 귀감이 되었죠. 어려운 상황일수록 회피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누구나 더 나은 인생을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어디에 가치를 둘지 각자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 책임을 다하는 게 도리라고 여겨 400억 원 빚을 떠안은 유자와 쓰요시. 어떤 걸 선택해도 그 과정이 순탄할 리 만무합니다. 비단 이 둘의 인생만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의 인생도 무게는 다르더라도 각자 선택할 가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중요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설령 그 끝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말이죠. 혹여 바라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만한 가치와 의미는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의 인생도 하찮지 않을 테니까요.
이 책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는 2019년에 읽었습니다. 자기 계발에 발을 들여한참 빠져있었을 때였죠. 그때는 크게 감흥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제 의식이 넉넉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게 여럿입니다. 특히 외부 환경으로 인해 저자의 말투와 태도가 날카롭게 변했다는 점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됐습니다. 중요한 건 그런 자신을 스스로 인지했다는 점입니다. 그랬기에 마음을 다잡고 끝까지 책임을 다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긴 시간 버텨낸 것도, 책임을 다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한 가지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를 올바로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야 삶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피할 것인지, 정면으로 부딪쳐 뚫고 나갈 것인지를 말이죠. 여러분은 둘 중 어느 쪽인가요? 내가 정말 바라는 인생은 그 고난 너머에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