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5일 첫 번째 글
첫 발을 내딛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나는 완주할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나는 완주할 수 있다'입니다. 두 문장은 서술어 차이입니다. 주어와 동사는 똑같습니다. 나에 대해 의문을 갖느냐, 아니면 확신을 갖느냐에 따라 문장 의미가 180도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두 문장 중 어떤 문장을 주로 쓰시나요? 하는 일마다 자신을 의심하나요? 아니면 무슨 일이든 자신을 믿고 시도하시나요?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도 달라집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목표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습니다. 10킬로미터를 달리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달릴 거리만 정해진 것뿐이죠. 달리는 중간 어떤 일이 생길지 달려봐야 알 수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아 이전보다 빠른 기록으로 완주할 수도 있고,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페이스 조절을 잘해 목표대로 완주하면 다행입니다. 시작할 때 '나는 완주할 수 있다'라고 마음먹은 대로 된 거죠. 그러나 달리는 중간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나는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다시 떠오릅니다. 멈출지 말지 고민이 이어집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과감히 멈추는 게 맞습니다. 또 달려야 한다면 말이죠.
부상으로 이어질 상황이 아니면 대개 악마의 속삭임 같은 유혹입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이런 핑계는 대개 힘들 때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죠. 피로도가 올라갈수록 멈추고 싶은 욕구도 강해집니다. 임계점에 도달할 때 그 순간을 뛰어넘느냐 주저앉느냐를 결정짓게 하죠.
힘들면 의지와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당장 쉬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죠. 포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계속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못 달린 건 다음에 달리면 되겠지', '내 몸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충분해', '오늘만 달릴 게 아니니까 또 기회가 있어'라고 핑계를 만들어냅니다.
달릴 때도 '파레토 법칙'이 적용됩니다. 10킬로미터를 목표했을 때 8킬로미터 지점부터 체력에 한계가 옵니다. 이때 남은 2킬로미터를 완주해 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저도 이 구간에서 고비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 속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달린 게 아까우니 계속 달리자'라고 말이죠. 한편으로 8킬로미터를 달린 자신이 대단합니다. 또 이만큼 달렸으면 남은 거리쯤은 충분히 달릴 수 있다고 격려해 줍니다. 꾸역꾸역 달리면서요.
"두려운가? 오히려 잘된 일이다. 두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맞서라."
-니체
고통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의심과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만약 포기한다면 의심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좌절과 후회가 밀려옵니다. 니체의 말대로 두려움을 느끼는 건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건 순간의 선택입니다. 자기를 믿고 선택하면 결국 완주하게 됩니다. 도망치지 않았기에 얻게 되는 영광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시작에 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기 믿음에 근거한 한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있을까?'라는 의문문과 '~있다'로 끝나는 현재형 문장입니다. 두 서술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러분은 도전 앞에서 어떤 문장을 떠올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