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부고를 대하는 태도

2025년 6월 15일 두 번째 글

by 김형준

현실적인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퇴사한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의 부고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조문을 갈 건가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머뭇거리는 이도 분명 있습니다. 전자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부류입니다. 후자는 이런 고민을 할 겁니다. 동료의 직계 가족 조문은 흔적을 남김으로써 내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상대방도 당연히 조문을 올 거라 여깁니다. 그러나 동료의 부고는 내가 그곳에 다녀갔는지 그의 가족만 압니다. 정작 당사자에게 알릴 방법이 없죠. 누구는 이런 질문이 불편하고 쓸데없다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자체가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죠.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제가 엊그제 이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동료가 지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곳을 퇴사했고 다른 직원 통해 연락도 못 받았습니다. 퇴사했으니 따로 연락할 필요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니 조문을 안 가도 그만이었습니다. 제가 부고 소식을 접한 건 돌아기신 분과 개인적으로 주고받던 카톡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제가 퇴사한 걸 모르고 보냈던 것 같습니다. 몰랐으면 모를까 부고장을 받고 나니 고민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고민이었죠. 여러분이라면 저 같은 상황에서 조문을 가겠습니까?


저는 다른 동료에게 연락하지 않고 제가 편한 시간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전 직장 동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장례식장에서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고인에게 절만 올리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조문을 마쳤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라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가기 전 망설였지만, 이렇게 조문하니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겠지만 적어도 저는 알 테니까요.


사회 생활하면서 주변 사람 경조사를 챙기는 건 사람 된 도리라고 배웠습니다. 기쁘고 슬픈 일은 나눌 때 커지고 작아진다고 말하죠. 내가 베푸는 만큼 돌아오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말하고요. 개중에는 지나치게 조건을 따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의 경조사에 누가 왔고 얼마를 냈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져서 딱 그만큼만 되돌려주려는 이들이죠. 물론 그게 잘못된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테니까요. 어쩌면 그렇게 라도 챙기는 사람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테고요. 그게 사람 된 도리라고 말할 수 있지요.


모든 경조사를 다 챙기며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꼭 챙겨야 할 경조사만으로도 사람 된 도리가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다 찾아가면 서로 좋겠지만 설령 그러지 못한 들 상대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갈지 말지는 오롯이 당사자의 선택이니까요. 저도 제 마음 편하자고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제가 다녀갔는지 알리 없죠. 상주는 제가 다녀 간 걸 기억할리 만무합니다. 다시 만날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에서 적은 대로 여러분이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서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누구도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판단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 판단 또한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한 선택을 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인생을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는 후회를 덜 남기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후회는 시간이 지나도 쌓이면 법입니다. 그 반대는 점점 가벼워지겠죠. 생애 마지막 순간 가볍게 떠나려면 사는 동안 점점 가벼워지는 선택을 내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