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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직장인을 위한 인생 해답서(2)

by 김형준

살면서 어느 순간 깨닫는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거죠. 학교에서는 공정을 가르쳐도 현실 어딘가에는 공정하지 못한 것들이 당연한 듯 존재합니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공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도 공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심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확신으로 바뀝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첫 테스트처럼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음 단계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반대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단계에 머물던가 게임을 포기하고 말죠. 불행히도 상당수 직장인은 불공정을 언젠가 나도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에게 힘이 생길 때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듯 써먹을 수 있다고 말이죠.


왜 유독 직장에서는 공정하지 못한 걸까요? 제 생각에는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계급의 본질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은 욕망이 바탕이죠. 지금 위치에서 더 높은 곳에 오르는 방법은 무언가를 딛고 올라야 합니다. 쉽게는 사다리를 이용하는 거죠. 사다리도 누군가 잡아주는 이가 있을 때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사다리뿐 아니라 발판을 딛고 올라갈 때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옆에서 나를 돕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미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를 돕는 건 반대로 나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의미이죠. 다행히(?) 이미 정리된 서열 관계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정해져 있습니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게 발판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그래야 위에서 자신을 끌어줄 테니까요. 도움을 받는 이도 위에서 손을 내밀어 주겠다는 약속을 할 때 진실한 공생관계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런 계산된 관계가 형성되는 게 직장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공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요. 계급이 낮은 나는 한 계단이라도 오른 이를 돕고, 나 보다 높은 이는 나를 이끌어주며 보상해 줍니다. 이런 모습이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게 공정하지 못한 관계입니다. 좋은 말로 포장하면 직장인의 처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의 성과를 인정받는 게 도리어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조직은 은연중에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자신의 성과를 자기가 독차지하기보다 나를 이끌어줄 이에게 돌리는 거죠. 그게 팀이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팀 안에서 나의 성과가 도드라져 팀원 모두가 불편해지기보다 나만 감수하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죠. 조직도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죠.


문제는 이런 공생(?)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동안 보고 배운 대로 똑같이 따라 하는 게 하나이고, 남들은 따라오지 못할 만큼 월등한 실력을 키우는 게 다른 하나입니다. 전자의 선택은 어쩌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할 때 취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이미 검증됐습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만 채우면 그들처럼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거죠. 남의 성과를 내 것 인양하면서 말이죠. 후자의 선택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탁월해지길 선택하는 것이죠. 무리 속에서도 빛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런 존재들은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이미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있기 때문이죠. 스스로 존재감을 증명하고 성과를 보여주고 탁월함을 드러내면 적어도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될 때 적어도 자기에게는 공정을 기대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너무 극단으로 몰아가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조직 문화에 따라 분명히 다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 내가 속한 조직에서 성과를 내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다행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이상적인 조직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죠. 그렇다고 그런 회사만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조직 문화를 가졌든 그 안에서 적응해 내는 게 먼저입니다. 조직 문화를 탓하며 순응하고 남들처럼 살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르게 살지를요.


직장에 다니는 우리는 모두 직장을 떠납니다. 더 나은 조건의 이직 일수도, 더 높은 직급으로 이동일 수도, 아니면 더 이상 일할 수 없어 퇴직할 수도 있죠. 어떤 이유로 떠나든 실력은 남습니다. 조직을 위해 성과를 인정받지 못해도 나름 열심히 자기 색을 내며 제 역할을 해낸 사람 있습니다. 조직에서 내 성과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남들과 같은 색으로 시간만 때운 이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과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이직도 승진도 퇴직에서도 당당할 것입니다.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고 여길 테죠. 반대로 무채색으로 살아왔다면 기회를 잡지 못할 테고요.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공정은 존재합니다. 내가 싫다고 사라지지 않죠. 대신 우리는 불공정에 맞서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 거듭날 것인지, 초록은 동색으로 묻혀 살 것인지를요. 내가 내린 선택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살면서 어떤 장벽을 만날지 모르지만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된다면 무엇이든 자기 의지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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