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1년 6월 공소기각판결, 이건 아니지

by 김형준

판사의 처벌은 예상을 빗나갔다. 이제까지 해온 짓을 보면 충분히 실형을 살 수 있을 거로 짐작했다. 검사의 즉각 항소로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기각'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인다. 자칫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게 되면 그들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다. 10여 명의 가정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줬어도 죄를 묻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테다.


2014년, 재직 중인 회사에서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었다. 3개월 기다려도 월급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를 옮겨야 된다는 주변 권유를 무시했다. 사장은 온갖 사탕발림으로 나를 비롯해 여러 명 발목을 붙잡았다. 어쩌면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게 맞다. 그때는 어디로 옮길지 막막했었다. 이직이라는 불투명한 가능성보다 사장의 속삭임에 더 믿음을 실었다. 결국 그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13개월 치 월급을 받지 못했고, 노동부에 신고했다. 체당금으로 3개월 치 구제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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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장은 파푸아뉴기니에 체류 중이었다. 정부로부터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자금이 막혔고, 입국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체불로 인해 노동부에서 검찰로 고소가 된 상태였다. 만약 입국하면 즉시 체포될 수도 있었다. 사장은 그곳에서 7년 동안 숨어 살았다고 한다. 2025년 초 어찌어찌해서 입국하게 되었고 그 즉시 검찰에서 기소 했고 불구속 상태에서 공판이 진행됐다.


지난 6월 첫 공판에 참석했었다. 10여 년 만에 사장을 만났다. 길에서 마주쳐도 몰라보고 지나칠 만큼 평범한 행색이었다. 사장으로 군림할 당시 화려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7년을 파푸아뉴기니 정글에 숨어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그 사이 외모에도 변화가 있었다.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잠시 뒤 알아보는 눈치였지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나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측은한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난 8월 19일 판결이 있었다. '징역 1년 6월 공소기각판결'이었다. '공소기각판결'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죄는 있지만 이를 입증 할 수 없거나 기소 사실이 부족할 때 내리는 판결이란다. 피의자에게 유리할 수 있는 판결이다. 검사는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을 준비 중이란다. 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죄는 있는 데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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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항소심을 준비하며 피해 직원들에게 합의서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한 다른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합의서를 써줬단다. 2028년까지 밀린 임금을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나는 절대 합의는 없다고 이미 주변에 알렸다. 아마 사장의 귀에도 들어갔을 터다. 내가 이러는 데는 앞서 사장이 나를 절도죄로 고소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못 받은 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 보유 장비를 법원 경매를 통해 처분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괘씸히 여겨 나를 절도로 신고했다. 나는 둘이 공모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죄'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검사는 이유를 듣고 정상 참작해 '기소유예 5년' 결정을 내렸다. 5년은 지났다.


사장은 그때도 밀린 월급을 줄 의지가 없었다. 있었다면 나를 고소해서는 안 됐다. 오히려 기다려준 나에게 미안해하며 장비를 처분할 수 있게 먼저 말했어야 했다.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는 그들이 그때부터 사람 된 도리를 할 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합의서에 약속한 날짜도 지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당장 지금을 모면하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악인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합의서를 써주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받아야 할 돈을 먼저 줄 때뿐이다. 돈은 거짓말 하지 않으니까. 나는 돈보다 사장이 실형을 살길 바란다. 징역을 살지 않게 되면 다시 파푸아뉴기로 들어가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하는 데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변수가 워낙 많은 나라여서 당장 내일도 장담 못한다. 이미 경험해 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또 한 여러 사람 애먹이지 말고 차라리 제대로 벌을 받길 바라는 거다. 그게 진정한 정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회는 그만한 능력과 가치가 있는 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피눈물 나게 한 이에게 다시 살아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죗값을 치르고 난 후여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검사에게 찾아가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싶다. 나를 절도죄로 고소했다는 건 이미 반성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법의 논리보다 사람됨의 기준으로 벌하는 게 맞지 않냐고 판사에게도 따지고 싶다. 말로 안 되면 탄원서라도 쓸 작정이다. 8년 동안 매일 쓴 실력이면 적어도 판사의 눈꺼풀 몇 가닥은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볼 작정이다. 벌을 받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게 당연해지는 결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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