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 불콰해진 얼굴로 말했다."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중)
이 문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았나요? 찾았다면 이유도 설명할 수 있나요? 아니면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콰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사전에는 '얼굴빛이 술기운을 띠거나 혈기가 좋아 불그레 하다'라고 정의합니다. 술기운이 오른 얼굴을 '불콰하다'라고 표현하는 거죠.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으며 이 단어를 처음 봤습니다. 오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럴 것 같지 않아서 검색했죠. 오타가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처음 보는 단어를 자주 만납니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생소한 단어를 더 자주 봅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단어들이죠. '불콰하다' 같은 표현은 평소 대화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죠. 그러나 단어를 알면 대화 중 사용할 수도 있겠죠. 그럴 경우 조금 근사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폭이 넓어지면 내 세계도 확장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이 독서입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릴 때 편식하면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부모가 잔소리합니다. 편식으로 인해 키도 자라지 않고 건강해지지 않기 때문이죠. 언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늘 사용하는 어휘만 반복하면 생각도 늘 제자리를 맴돌 겁니다. 고른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과 같겠죠.
부모가 편식을 일찍 고치려는 이유는 아이마다 성장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기를 놓치는 것은 골든 타임을 잃는 것과 같죠. 성장과 다르게 어휘력은 정해진 골든 타임이 없습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효과도 볼 수 있죠. 시작하지 않을 뿐 시작하면 누구나 어휘력은 키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내 어휘가 확장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말하고 글로 써야 알 수 있습니다. 읽는다고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 알게 된 단어는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때 내 것이 됩니다. 대화나 글쓰기를 통해 자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죠. 머릿속에만 있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글을 잘 쓰는 게 아니고, 글을 잘 쓴다고 말도 잘하는 건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다만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 중에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꼭 있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치고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고요.
결국 말과 글에는 내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의 크기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양에 좌우될 것이고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내 세계의 한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휘력을 키우는 것은 필수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죠.
인공지능의 발전은 질문의 중요성을 부각했습니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죠. 질문을 잘하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유연한 사고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영향을 받습니다. 바꿔 말해 폭넓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면 유연한 사고도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휘력을 통한 사고의 확장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독서를 통해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죠. 나의 한계를 결정짓는 게 육체의 노화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어와 생각의 한계가 행동을 가로막는 게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반대로 어휘력을 통해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면 행동도 거침없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