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갉아먹는다

by 김형준

"글은 쓰기 싫은데 책은 내고 싶다."

요즘 내 마음이다. 한 마디로 도둑놈 심보다. 노력은 하기 싫은데 결과는 얻고 싶다니. 이 생각도 불현듯 떠올랐다. 다행히 내 심정을 잘 드러낸 표현을 찾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면 마땅한 핑계가 필요했다. 그 핑계를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었다.


왜 이런 마음이 자꾸 고개를 쳐드는지 한 번 생각해 봤다. 답을 의외로 쉽게 찾았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다. 김이 빠진다고 할까? 뭘 해도 도통 약빨이 먹히지 않는다. 변죽을 울리는 꼴이다. 이쯤 되면 어디서든 하나쯤 빵 하고 터질 법도 한데 말이다. 8년째인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강요당하는 느낌이다. 정성이 부족해 기도빨이 들지 않는 것처럼. 차라리 기도할 대상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깜깜하다.


지난주부터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굿 멘토'교육에 참석 중이다. 오늘도 5시 반에 집에서 나와 강남역 GT타워에 6시 반에 도착했다. 그 시간에 도착해도 이미 와 있는 멤버도 있다. 가만 보면 나는 부지런한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픈네트워킹 후 오늘 주제인 <에너지 버스> 독서 토론을 시작했다.


이 책의 핵심은 자기 인생에 주인으로 살기 위해 먼저 자신부터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에너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단다.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는 '에너지 뱀파이어'를 인생에서 내쫓으라고 일러준다. 결국 스스로 더 건강해져야 주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토론 중에는 열변을 토했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말과 태도를 보였다. 에너지가 달아오르는 듯했다. 이 기분대로 하루를 살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주변 사람에게 에너지를 전하고, 같은 공간에 있는 그들도 나에게 에너지를 보냈다. 2시간 남짓 토론이 마무리되고 오전 일정이 없는 4명이 국밥집을 찾았다. 이미 허기진 배를 콩나물 국밥으로 채웠다. 다 먹고 일어서는 데 9시 반이었다. 하루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올림픽대로는 규정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 전화가 왔다. 소상공인 운영자금 대출 관련이었다. 지난 연말에는 예산이 소진돼 받을 수 없었다. 해가 바뀌면서 새롭게 시작되었고, 신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플을 통해 순조롭게 신청을 마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니 맥이 빠졌다. 이유를 모르겠다. 대출이 필요한 내 처지 때문이었을까?


처지 때문인 것도 맞다. 앞에 적었듯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것도 한 몫하는 중이다. 한꺼번에 둘이 섞이니 기분은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갔다. 억지로 노트북을 열었지만 쓸데없이 마라톤 대회 일정만 뒤적였다. 이마저도 신청하지 않았다. 참가하고 싶은 대회는 이미 마감이었고, 아무 대회나 신청했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더 망설였다. 시간만 버렸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에너지를 갉아먹은 하루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잔뜩 에너지 띄워났더니 제 풀에 걸려 넘어진 꼴이다. 이 정도도 통제하지 못하니 참 한심했다. 3시간 동안 딴짓만 하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가방을 쌌다. 새벽 도로에 눈이 쌓여 제설차 꽁무니를 잠시 따라갔다. 그 덕분에 차에 염화칼슘이 덕지덕지 붙었다. 영하 4도였지만 손세차했다. 이거라도 해야 구덩이에서 마음이 기어 나올 것 같았다. 물기는 5분도 지나지 않아 얼었다. 손도 얼었다. 대충 물기를 닦고 차를 몰았다.


운동을 하러 갔다. 땀을 흘리면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몸에서 땀이 빠져나가면서 나를 가라앉혔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도 딸려 나가길 바랐다. 허벅지에 통증이 전해질만큼 횟수를 반복했다. 뻐근한 느낌으로 샤워를 했다.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집에 가기 전 글 한 편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실천했다. 얼레벌레 한 편 썼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내가 '에너지 뱀파이어'가 될 것이다. 내가 썼지만 내가 생각해도 우울하다. 굳이 이런 글을 써야 하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라도 써야 나를 짓눌렀던 악당 같은 에너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먼저 살아야 내 주변도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도 실컷 샤워하고 난 뒤 땀에 젖은 속옷을 입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내 의지대로 이 글을 쓴 게 천만다행이다. 조금은 기분을 업시켜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가족들에게 인상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밖에서 있었던 일은 집으로 가져말자는 게 지켜야 할 원칙 중 하나이다. 괜히 나 때문에 애먼 가족들 기분 상하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얼렁뚱땅 글 한 편 쓴 걸로 나를 위로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도 퇴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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