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는 도구, 글쓰기

by 김형준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인생의 전환점에 선 이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합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하나?', '내가 정말 잘하는 게 있긴 할까?' 같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머릿속으로만 하는 생각은 대개 '생각'이 아니라 '걱정'의 반복에 그칩니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헤매듯, 형체 없는 고민들은 우리를 더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도구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의 추상적인 에너지를 종이 위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박제'하는 행위입니다.


많은 이들이 생각이 정리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글을 써야 비로소 생각이 정리됩니다. 미국의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쓴 것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


글쓰기는 뇌의 작업 기억에 과부하를 주는 복잡한 정보들을 외부 저장 장치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오프로딩'이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파편화된 정보들을 문장이라는 논리적 구조 속에 집어넣는 순간, 우리 뇌는 비로소 여유 공간을 확보하고 더 깊은 차원의 분석과 판단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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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혼란을 정리해 준다는 사실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닙니다. 텍사스 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 교수는 수십 년간 '표현적 글쓰기'의 효과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고 면역 체계가 강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 뇌가 혼란스러운 사건에 '서사적 구조'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했던 고민들이 문장으로 연결되면서 '이해 가능한 사건'으로 변모하고, 이 과정에서 심리적 엔트로피(무질서도)가 급격히 감소하게 됩니다.


글쓰기의 가장 강력한 힘은 '거리 두기'에 있습니다. 머릿속에 있을 때 '나의 문제'였던 것들이 종이 위에 문장으로 적히는 순간 '하나의 텍스트'가 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의 활성화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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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편집자가 남의 원고를 교정하듯, 내 고민을 문장으로 읽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냉철한 관찰자의 눈을 갖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지?"라는 막연한 감정이 "나는 현재 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있구나"라는 명확한 진단으로 바뀌는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생의 초고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거리 두기'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인생은 열정만으로 설계되지 않습니다. 치밀한 논리와 정교한 자기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글쓰기는 그 설계를 위한 가장 정밀한 도면입니다. 오늘 당신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파편 하나를 붙잡아 문장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그 문장이 당신의 혼란을 걷어내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의 퇴고 연습: 생각의 오프로딩]

Q. 지금 당신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고민 세 가지를 '명사'가 아닌 '문장'으로 적어보세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보다 얼마나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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