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라.
#8. 쓸수록 쓸모 있는 단어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한 조각
17대 1도 가능하다.
어쩌면 이보다 더 많아도 일당백 할 수 있다.
나뭇잎이 풍성해야 보기 좋듯
숫자가 많을수록 다양성이 넘쳐난다.
일당백의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다름을 인정하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피가 튀고 살이 찢겨 나간다.
너는 너다.
나는 나다.
너를 나로 착각하면서부터
현실에서 비현실로 빠져든다.
비현실에서 나는 내가 아니다.
숨어 있던 진짜 나를 꺼내온다.
이런 자신의 이중성을 통제하는 게 인간의 이성이다.
이성이 이중성을 통제하지 못하면 인간이길 포기한 거다.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은 자신을 합리화한다.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닌가?"
맞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누구나 그런 이중성은 있다.
하지만 다 드러내 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성이 있으니 스스로 통제하고 사는 거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다.
거짓을 진실처럼 말할 땐 희열을 느낀다.
양치기 소년도 그릇 된 희열로 망했다.
양치기 소년은 양을 잃었지만
당신은 인생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인생도 빼앗는다.
악의적인 먹물 한 방울이 흰 종이를 집어삼키듯
순결한 그들을 물들인다.
한 번 든 얼룩은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
흔적을 남긴다.
누구나 처음이 있다.
처음은 늘 설렌다.
첫 직장
첫 입학
첫 시험
첫사랑
설렘과 떨림, 긴장감으로 입술이 바짝 마른다.
이때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젖은 옷을 말리는 따뜻한 볕과 같다.
따뜻함은 오래 기억된다.
따뜻함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회가 된다.
진심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통하게 되어있다.
배려는 서로를 여유롭게 해 준다.
격려는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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