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10. 쓸수록 쓸모 있는 단어

by 김형준

서른한 살, 처음 스키장에 갔었다.

어릴 땐 눈 쌓인 곳이면 어디든 썰매를 탈 수 있었다.

썰매가 없으면 비닐 포대라도 있으면 스피드를 즐길 수 있었다.

처음 본 스키장은 모든 게 새로웠다.

어린 눈높이로 본 야산과는 비교도 안 될 높이의 산에

인공으로 만든 눈을 뒤덮어 놓았다.

높이에 한 번 압도되고 깎아지는 경사도에 또 한 압도되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경이로웠다.


새로 구입한 스키복을 입고

빌린 보드 장비를 들고 스키장에 입장했다.

부츠는 불편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곤돌라에 올랐다.

초급자 코스에 올라 난생처음 보드에 몸을 싣었다.

중심은 잡았지만 앞으로 나가는 건 어려웠다.

대충 설명을 들었지만 몸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였다.

몇 번 눈 위를 구른 뒤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느린 속도 탓에 불지도 않는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으며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재미를 느끼기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했다.

고된 몸부림 탓에 이미 탈진상태였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차츰 속도는 붙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타면 제법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턴 동작을 익혀야 한다.

속도를 내는 건 턴 동작의 능숙도에 달려있다.

동작은 자칫 뒤로 넘어질 수 있다.

나 같은 초보가 뒤로 넘어지

그나마 생긴 자신감마저 잃을 것 같았다.

'할 수 있을까'

시도는 해 보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보는 이들은 답답해했다.

나도 배운 대로 몸이 따라주길 바랐다.

시도할수록 실패했고,

실패할수록 움츠려 들었다.

움츠려 들수록 자신감도 떨어졌다.

결국 그날 턴 동작은 하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불안감.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 불안하다.

할 수 있을까 의심부터 든다.

해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과의 차이는 단순하다.

시도하는 사람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다.

불안하고 의심 들어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시도해서 실패하면 또 시도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한 번 성공한다.

그 한 번의 성공이 주는 성취감이 불안을 씻어준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자신감이 자리 잡는다.

자신감은 더 큰 도전을 불러온다.

이렇게 불안을 극복한 사람만이

잘할 수 있게 된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변화를 겪는다.

자발적인 내적 동기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

외부 충격에 의해 변화를 결심하는 사람.

어떤 이유든 변화 앞엔 언제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불안이 없는 변화는 딱히 기대할 게 없을 수도 있다.

변화가 가져다 줄 기대치가 클수록 불안의 크기가 클 수밖에 없다.

누군간 불안이 거대해 보여 회피하기도 한다.

결과보다 당장의 불안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도를 통해 불안을 극복하게 되면

기대했던 변화를 얻게 된다.


불안은 수많은 감정 중 하나다.

감정을 조절하는 주체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감정에 일희일비하면 감정이 흐르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

우리는

감정에 하인이 아닌

감정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불안은 이미 불안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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