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 불안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17. 쓸수록 쓸모 있는 단어

by 김형준

행동

: 불안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대리 직급 때 구매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현장에서 구매 기안이 올라오면 몇 개 업체 견적 대비 후 결재를 올린다. 결재는 팀장, 이사, 상무 순으로 받아야 했다. 몇 개 현장 기안을 모아 한 번에 결재받는다. 깐깐한 팀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질문을 쏟아낸다. 질문에 답을 못하면 다른 기안은 보지도 않고 다시 준비해 오라고 한다. 반나절 준비한 내용을 다시 반나절 동안 답변할 내용을 정리한다. 그렇게 결재가 밀리면 업무도 밀리게 되고 업무량은 점점 많아진다. 그러니 결재받기 위한 준비과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준비해도 때론 별 의미 없는 내용으로 태클을 걸기도 한다. 한 번 두 번 쌓이다 보니 위축됐고 결재받는 게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결국 그 회사는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때부터 결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규모가 작은 회사로 옮겨도 결재는 피할 수 없다. 임원, 대표에게 직접 결재받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내 실수가 아니라도 보고 내용이 맘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큰소리를 낸다. 그걸 듣고 있으면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결재 없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대면 보고도 잘 못했던 내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기로 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동기부여 강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꿈을 이루겠다는 꿈만 꾸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청울림’ 대표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커뮤니티 회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강연일은 메일을 보낸 날로부터 두 달 뒤였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발송했고 이틀 뒤 기꺼이 기회를 주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허락을 받고 나니 걱정만 남았다. 강연 주제도 없이 무작정 날짜만 잡았다. 남은 두 달 동안 어떻게 준비할지 생각했다. 청울림 대표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조언대로 우선 주제를 정하고 스토리를 구상하고 PPT를 만들기로 했다. 정작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몇 명 앞에서 강연을 하게 될지 정해지지 않았다. 보통 2주 전에 강연 공지를 내고 1주일 전에 모집을 한다고 했다. 한 명이 될지, 오십 명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몇 명이 듣든 준비는 철저히 해야 했다.


강연을 결심한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그즈음 스피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강연자를 꿈꾼다면 대면보고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또 학생 때 이후 남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극복해야 할 것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해 스피치 수업을 꼭 필요했다. 소그룹 스피치 수업을 진행하던 현직 홈쇼핑 쇼 호스트 지인이 있었다. 수업을 듣고 하나씩 과제를 하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어쩌면 과제 덕분에 강연을 결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첫 주 과제는 자신의 꿈을 ‘가족’ 앞에서 10분 분량으로 발표하고 영상을 찍어 보내는 것이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과연 ‘가족’ 앞에서 발표할 수 있을지 나 자신을 의심했다. 평소 집에서 말도 적고 살갑지도 않다. 아내와 대화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과제를 해야 내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달간 매주 금요일 저녁을 발표 시간으로 정했다. 첫 발표를 위해 가족 앞에 섰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긴장되었다. 십 여분을 망설였다. 짧은 시간 수 만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그만둘까’ ‘괜히 시작했나’ ‘잘 못하면 어쩌지’ ‘아이들이 웃지 않을까’ 말이 입 속에서 한 동안 맴돌았다. 수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드디어 입을 뗐다. 그 찰나의 순간, 내 안에 불안으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스피치를 시작했다. 강사님께 배운 대로 발성, 자세, 내용을 신경 쓰며 발표를 이어갔다. 금요일 발표를 위해 일하는 틈틈이 스터디 룸을 빌려 연습했다. 연습 영상을 찍고 되돌려 보며 자세와 발음을 교정했다. 연습을 위해 연습을 거듭했다. 처음 보다 두 번째 발표가 수월했다. 발표를 이어갈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또 하나 좋았던 것 아이들이 호기심에 나를 따라 PPT를 만들고 발표를 하겠다는 거였다. 서툴지만 진지하게 발표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가족 앞에서 발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발표 기회, 나의 자신감은 행동으로 옮긴 결과물이었다.


두 달은 생각보다 짧았다. 일주일 전 모집공고가 났고, 서른 분이 신청해 주셨다. 각자의 돈과 시간을 기꺼이 할애 주셨기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내 안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하나씩 준비해온 것들을 아낌없이 쏟아내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청울림 대표님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스피치 강사님도 강의를 들었고, 부족한 게 없었다고 치켜세워 주셨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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