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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5. 2021

둘째가 태어나던 날

밥상머리에서 배운 것들

12월 31일, 아침부터 아내는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 째를 낳은 경험 덕분에 비교적 차분하게 입원 준비를 했다. 점심쯤 첫 째를 낳았던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4년 만이었다. 첫 째를 낳고 아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두 번 다시 똑같은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둘 이상을 키우는 부모가 다시 아기를 낳는 이유는 아이에게서 얻는 행복감이 출산의 고통을 잊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 째, 보민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부부도 아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감과 새로운 경험으로 삶이 풍성해짐을 알게 되었다. 고민을 했었다. 보민이게만 집중을 할지, 둘째를 낳아 보민이도 우리도 다시 한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맞을지를. 부모님, 장모님, 형제, 친구들 모두 입을 맞춘 듯 대답은 똑같았다. 보민이를 위해,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둘째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4년을 고민한 끝에 드디어 둘째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연말이라 분만을 준비 중인 산모가 적었다. 병원에서도 연말에 아이를 낳는 수가 적다고 했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보민이를 낳을 때보다 아내도 훨씬 안정돼 보였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미리 경험한 탓에 두렵다고 했다. 나도 보민이를 낳을 때 옆에서 함께 해줬던 경험을 되살려 아내가 최대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도왔다. 병원 밖이 어두워지면서 아내의 진통도 정도를 더해갔다.


“아직은 견딜 만하니까 나가서 저녁 먹고 와.”

“괜찮겠어? 나만 먹어서 미안하네. 배 많이 고프지?”

“별 수 없지. 이제부터 슬슬 준비해봐야지. 늦기 전에 어서 식사하고 와.”

“알았어. 앞에 가서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올게.”


병원 맞은편엔 설렁탕 전문 식당이 있다. 나 같이 출산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언제든 편히 먹을 수 있도록 24시간 열려 있었다. 연말 저녁이라 손님이 제법 있었다. 나처럼 혼자 오는 손님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로 안내받았다. 4년 전에도 보민이를 기다리며 배를 채웠던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뽀얀 국물에 알맞게 익은 깍두기와 김치가 나왔다. 밥 한 공기를 국물에 말았다. 밥알이 국물을 빨아들이는 동안 뭉친 소면을 풀어 한 젓가락 떴다. 입에 있는 소면을 부지런히 씹으며 다음 젓가락에 소면을 마저 건져냈다. 두 입 째 소면을 씹으며 김치 한 조각으로 소면의 밋밋함을 달랜다. 국물이 밴 밥을 숟가락으로 뜨고 위에 양지를 얹어 크게 한 입 먹는다. 이번엔 깍두기를 먹는다. 담백한 국물과 새콤한 깍두기 맛이 조화를 이룬다. 한 입 한 입 먹으며 그릇에 담긴 밥이 줄어들수록 곧 태어날 둘째를 만날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졌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다시 아내 옆으로 갔다. 든든하게 먹은 걸 확인하니 아내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8시를 넘겨 분만실로 이동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보민이를 낳았던 곳이었다. 보민이를 낳을 땐 진통 시간이 길었다. 무통 주사를 맞아가며 12시간 진통 끝에 만났었다. 그때 그 시간이 너무 힘들게 기억되어 있었는지, 이번엔 덜 힘들기를 아내도 나도 바랐다. 10시를 넘기자 진통의 세기와 횟수 잦아졌다. 뱃속 아기도 서서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11시가 되면서 간호사와 의사의 손이 바빠졌다. 아내도 긴장을 넘어 비장함이 드러났다. 드디어 4년 전 경험을 다시 한번 겪을 때가 왔다. 병원 밖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들떠 있을 순간 아내는 마지막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태연한 척 아내를 안심시키고 있었지만 내 가슴이 뛰는 걸 숨길 수 없었다. 0시 26분 드디어 둘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의 뱃속에서 10달간 서로를 이어주던 탯줄은 내가 자르며 온전한 존재가 되었음을 알렸다.   

  

아내는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옆 분만실에 두 명의 산모가 더 있었다. 비슷한 시간 진통을 느꼈던 세 명의 산모가 있었다. 셋 중 누가 병원에서 인증하는 새해 첫 아이가 될지 보이지 않는 경쟁 같은 게 있었다. 셋 중 한 산모는 진통이 적어지면서 제일 먼저 순위에서 멀어졌다. 남은 한 산모는 진통은 잦아졌지만 첫 아이라 그런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제왕절개 수술을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둘째는 주위 경쟁(?)을 가볍게 따돌리며 병원 인증 그 해 첫아기가 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둘째는 앞으로 자신이 차 안에서 편히 앉을 수 있는 카시트를 갖고 태어났다.      


두 아이의 탄생의 순간을 옆에서 함께 했다. 뼈마디 가 끊어지는 고통과 같다는 산통을 옆에서 지켜봤다. 아내는 온몸의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견디며 두 아이를 세상 밖으로 데려왔다. 나는 상상도, 짐작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냈다. 기꺼이 고통을 이겨낸 준 아내 덕분에 지금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두 아이도 한두 번 병원 신세를 지며 안타까운 순간이 있었지만 잘 이겨내며 건강해졌다. 손 안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때를 지나 이제는 자기 의견,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존재가 되었다. 때론 다툼도 있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행복을 선물하기도 한다. 갓난아기 때 아무 조건 없이 씽긋 웃는 표정에 모든 피로와 긴장이 풀렸다. 어설픈 동작과 음정 박자도 무시하고 열심히 부르는 노래 한 곡이 근심 걱정을 덜어 주었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걸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잘 자라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꼈다. 앞으로 두 아이가 어떤 인생을 살지 모른다. 부모의 기대를 채워 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심하게 부딪힐 수도 있다. 누군가 그럴 때면 차라리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한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간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아이도 아이가 처음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라고 다 옳은 건 아니다. 아이라고 다 틀린 것도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게 먼저 인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부모 자식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가장 우선에 두었으면 한다. 부모 자식이 서로에게 언제나 든든한 한 편이 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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