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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26. 2021

실수투성이였던 어제의 나에게

습작하는 김작가 - 16


아픔이 두려워 도망치기만 하면 상처와 대면할 수도, 상처를 치유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내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글로 썼을 때, 독자들은 깊은 친밀감으로 내 글과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와 주었어요. 이렇게 저에게 글쓰기는 '매일, 더 나은 자신이 되어가는 길'위에 서 있는 일입니다.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픔을 온전히 끌어안을 때, 우리는 아픔조차 자신의 소중한 일부임을 깨닫는 더 깊고 커다란 나 자신과 만날 수 있어요. 우리가 글을 쓸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요. 실수투성이 어제의 나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지혜롭고 강인한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





"여보, 내일까지 옆집 아저씨에게 빌린 5백만 원 갚아야 하는데 어떡하지?"

남자는 안절부절못했다. 

꼭 갚겠다고 수 백 번 약속하고 겨우 빌렸다. 

남자도 일이 꼬이면서 결국 갚지 못하게 되었다. 

아내에게 사정 설명해 봐도 돈 나올 곳이 없었다. 

밤이 깊어도 잠들지 못했다. 

뒤척이던 탓에 아내도 잠을 못 자긴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아내가 외투를 걸치고 방을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물어보지도 못했다. 

몇 분이 지나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아내가 돌아왔다.

"옆집 아저씨한테 내일 돈 못 준다고 말하고 왔으니 당신은 이제 편히 자면 돼. 

아마 당신 대신 옆집 아저씨가 못 잘 테니 이제 그만 잡시다."


내 문제를 나만 알고 있으면 내 문제밖에 안 된다.

내 문제를 주변 사람에게 꺼내면 모두의 문제가 된다.  

사실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를 꺼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반대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용기를 내면

주변 사람의 도움 또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자기 계발에 발을 담그고 미친 듯이 쫓아다닌 때가 있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만났고

필요한 강의가 있으면 일요일도 집을 나섰었다.

이런 나를 아내는 가만히 두고 보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때가 되면 어떤 말이라도 하겠지.

한 달 두 달 반년이 지나도록 아내에게 이렇다 할 설명을 안 했다.

결국 아내는 폭발했다.

몇 개월 동안 치고받는 싸움이 이어졌다.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거리를 돌아와서

마주한 사실은 단순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처음부터 말을 하고 시작하면 되잖아. 

나한테 설명하면 내가 못하게 말리겠어. 당신만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했어야지."


늦은 나이에 자기 계발을 시작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게 부끄러웠다.

며칠 못가 포기하면 보는 아내도 실망할 것 같아 먼저 말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말할 용기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결과적으로 생각을 잘못했다.


처음부터 말을 했으면 적어도 아내가 오해하고 다툴 일은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말했으면 오히려 아내의 지지를 받고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다.

혼자만 지레짐작해 말할 시기를 놓쳤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가장으로서 잘 먹고 잘 사는 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자식 노릇을 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더더욱 혼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럴수록 주변에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3년 동안 묵묵히 나를 지켜봤다.

나도 그동안 꾸준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냈다.

올 한 해 동안 나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내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변화였다.

내 이름의 책을 냈고,

더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했다.

몇 천 원의 저작권료,

몇 만 원의 인세,

몇 십만 원의 강의료를 받아왔다.


과정이 현명하진 못했지만

문제를 드러내고 삐걱대는 부분을 맞춰간 덕분에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고 있다.

나를 위해 시작한 자기 계발이었지만

둘의 문제로 드러내게 되면서

서로를 발전시키는 자기 계발이 되었다.

아내는 얼마 전 대학원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나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바라보게 되면서

우리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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