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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30. 2021

어둠에서 빛을 찾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뿐

습작하는 김작가 - 20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둔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죽음이 두려운 건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죽음의 순간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기에 막연히 상상할 뿐입니다. 


흰 종이가 두려운 건 어떤 내용을 채워야 할지 막연하기 때문일 겁니다.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 중 하나를 잡아채야 하지만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하나가 잡혀도 편집부터 시작합니다. 적절한 내용인가? 읽을 사람이 있을까? 잘못 쓰면 어떡하지? 망설이다 한 글자도 못 씁니다. 시작도 안 하고 편집부터 하면 한 글자도 못쓰는 게 당연합니다. 글쓰기의 최대 장점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고치는 과정 즉, 퇴고를 거치면서 내용도 다듬고 표현도 고치고 맞춤법도 수정하면서 완벽(?) 한 글로 거듭납니다. 형제가 많은 친구는 겁도 없습니다. 싸우거나 사고를 쳐도 뒤를 지키는 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겁 없이 날뛰는 동생이 '초고'라면 뒤를 든든하게 지키는 건 '퇴고'입니다. 형제가 합심하면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초고와 퇴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쓰는 게 막연하고 두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저는 직장을 다닙니다. 4년 동안 매일 아침 글을 씁니다. 아침은 하루 중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입니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흰 종이를 마주하지만 새벽의 어둠처럼 깜깜합니다. 관람열차를 타고 세상을 구경하듯 기억을 되돌려봅니다. 어느 자리엔가 있는 기억 한 자락을 붙잡습니다. 붙잡은 기억 속으로 촛불 하나를 들고 걸어 들어갑니다. 주변을 밝히면 기억 속 장면도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장면을 글로 옮겨옵니다. 검은 글씨가 채워지면서 기억 속 장면에도 빛이 듭니다. 사물이 선명해지고 인물마다 표정이 드러납니다. 대화가 들리고 행동이 보입니다. 그렇게 한 페이지에 하나의 기억이 한 장의 사친처럼 담깁니다. 한 페이지는 스스로 정해놓은 분량입니다. 출근 전 완료해야 합니다. 마무리 지으려면 퇴고까지 마쳐야 합니다. 대개는 초고를 쓰고 짧게는 하루, 길면 3-5일 정도 묵혀 두라고 합니다. 글이 서랍에 있는 동안 처음 생각은 숙성이 됩니다. 다시 꺼내보면 초고 때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고 여기저기 수정할 곳이 드러납니다. 숙성의 의미는 초고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상대방과 말다툼하며 흥분하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합니다. 시야가 좁아지면서 안 해도 될 말을 하고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 말과 행동이 상대를 더 자극하게 됩니다. 그래서 싸울 땐 잠깐 거리를 두라고 합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면 적어도 순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실수는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샛길로 빠졌습니다. 다시 돌아가, 저는 정해진 시간과 정해놓은 분량 때문에 퇴고까지 함께 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정성을 들인 글보다는 허점이 많은 건 인정합니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에 올리는 글은 일종의 연습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인데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도 했었습니다. 더 정성 들이고 다듬어 내 보이는 게 맞습니다. 제 딴에는 퇴고를 위해 묵혀두면 느슨한 연습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는 저를 짐작건대 어느 정도 강박이 없으면 갖은 핑계로 다시 안 꺼내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질은 좀 떨어져도 일단 완성하고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4년째 써오고 있습니다.


4년 가까이 정해진 분량과 시간 동안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초고와 퇴고를 함께 하는 연습 결과, 지금 이 글을 쓰는 정도까지 왔습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더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아직도 어둠 속에서 꺼내오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흰 종이를 마주하는 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습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온 연습 덕분에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도 과감하게 끄집어낼 용기가 생겼습니다. 앞서 죽음의 실체를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흰 종이가 두려운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적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운 실체와 마주하는 것입니다. 죽음이야 살아 있는 동안 마주할 방법이 없다지만, 흰 종이 정도는 연습을 통해 얼마든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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