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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25. 2022

20대, 술에 젖고 사람에 빠지다

그와의 잘못된 만남

1편 - 술, 이제 너를 놓아주련다

https://brunch.co.kr/@hyung6260/285



그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멀리서도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연예인이 그렇다. 그들은 나 같이 큰 얼굴을 더 커 보이게 하고, 작은 키 더 작아지게 만든다. 살다 보면 그들과 마주칠 일은 별로 없다. 대신 어쩌다 연예인의 외모적 아우라 대신 어딘가 귀티가 흐르고 지식이 충만해 보이는 그가 무심한 척 내 옆에 나타났다. 네 살 많았다. 이미 세상일에 통달한 듯 말수는 적었지만 눈빛으로 주변 사람을 제압했다. 한 겨울 얼음에 손이 안 가듯 차가운 눈빛 탓에 거리를 좁힐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배우 김희선은 차가운 외모와 반대로 소탈하기로 소문났다. 술을 좋아하는 주당답게 술자리를 통해 친분을 다진다고 했다. 그도 그랬다. 처음 술자리에서 그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정반대 사람이라고 보여줬다. 차갑기보다 정이 많았고, 근엄하기보다 소탈했고, 가진걸 아낌없이 베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약간의 허당끼가 거리를 좁히는 결정적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술친구이자 사업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는 자수성가했다. 영민한 머리로 제법 사업 수완을 발휘해 남산 밑자락에 방 40개짜리 고시원을 운영했다. 나도 제대 후 월세를 내는 조건으로 방 한 칸을 얻어 독립했다. 눈치 볼 게 없던 때라 우리는 거의 매일 술자리를 했다. 그는 삼겹살에 소주를 애증 했다. 항상 나름의 철학을 담아 고기를 쌈 싸 먹었다. 한 쌈 싸며 일장 연설을 이어갈 만큼 말도 잘했다. 논리에 막힘이 없었다. 그의 말이 시작되면 씹던 입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했다. 진실의 경계가 모호한 말도, 믿음이 안 가는 애매한 말도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그 순간은 어느 종교의 교리보다 더 신뢰했다. 가끔 술이 우리를 먹을 땐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 못 했고, 몸 여기저기 생체기를 내기도 했었다. 술에서 깬 그는 한결같이 지적인 외모로 돌아왔다. 그와 술자리를 안 해본 사람은 그의 그런 모습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그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임금님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복리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복리가 돈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주량은 소주 반 병도 안 됐다. 소주 한 병을 마시는 건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킥보드를 타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객기로 무장해도 선뜻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20대 중반에 고시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남다른 도전 정신 때문이었다. 그의 레이더에 걸린 나의 주량은 그에게 도전 정신을 불러왔다. 그는 술자리마다 나를 옆에 앉혔다. 그의 그런 흑심은 알지도 못한 체 그가 내어주는 자리를 냉큼 차지했다. 영민한 그는 나의 주량을 나도 모르게 늘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복리의 마법이 일어났다. 첫 달은 원래 주량인 반 병을 마셨다. 다음 달은 반 병을 더해 한 병이 되었고, 3개월 뒤엔 두 병, 6개월 뒤엔 네 병까지 갔다. 20대, 온몸에 기운이 넘치고 혈관에 막힘이 없을 때였다. 몸으로 들어오는 알코올을 생생한 간이 해독해주었고, 남은 독소는 넓은 혈관벽 타고 흐르는 피들이 청소해 주었다. 몸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소주 4병, 여기까지였다. 8병의 벽은 엄두가 안 났다.


29살의 12월 31일. 그는 한 밤중 자신의 짐을 하얀색 그랜져에 욱여넣고 '다시 보자' 네 글자를 남기고 떠났다. 야반도주였다. 26살부터 그와 함께 했다. 사업을 한답시고 숙소 겸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했었다. 그 덕분에 술은 원 없이 먹었다. 몸도 건강했던 때라 들어오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4년 반을 이어온 사업은 '빚'좋은 개살구였다. 그는 남의 돈을 끌어다 자기 돈처럼 썼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시설에 투자했다. 시설을 늘린 건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허세였다. 짐작컨데,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지자 새해를 하루 앞둔 그날 밤 홀연히 자신의 갈 길을 갔던 것 같다. 


17년이 흘렀다. 여전히 그는 소식이 없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얼핏 듣기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검증되지 않는 소식은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술에 최적화된 몸으로 30대를 시작했다. 한 번 알코올을 기억한 몸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배신당한 나는 내 몸을 더 깊은 술독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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