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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04. 2022

6년 만에 운동을 시작하는 각오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6년 만이다. 그 사이 근육은 자취를 감췄다. 힘을 주면 물컹한 살만 만져진다. 식단관리를 하기 전에는 거의 모두 지방덩어리였을 테다. 그나마 1년 넘게 음식 조절해서 지방은 어느 정도 빠졌다. 몸무게도 10kg 이상 줄어 있다. 운동의 필요성은 매일 자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다. 대신 몸에 필요한 식단관리로 체지방을 먼저 빼자고 마음먹었었다. 의지를 불태운 덕분에 지방도 태웠고 몸무게도 유지 중이다. 시간이 없다는 건 대의명분이었다. 그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월급은 신기루였다. 보이는 것 같다가도 눈을 비벼 다시 보면 사라지고 없었다. 월급은 늘 같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러니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 여유돈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눈치만 보다 1년, 3년, 6년이나 흘렀다. 


작년 이맘때 처음 성과급을 받았다. 3년 만에 처음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아내를 춤추게 했다. 기쁨도 잠시, 그 많은 돈은 또다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분명 필요한 곳에 쓰였을 테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다. 지난주, 똑같은 통장에 비슷한 숫자가 찍혔다. 아내는 또 한 번 춤을 췄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머물 것 같았다. 만찬을 준비했다. 아내의 최애 음식인 모둠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아내는 맥주로 입가심을 할 때 나는 정수기 물로 알코올을 부르짖는 정신을 씻어냈다. 탱탱한 살점들이 뱃속으로 사라질 즘 슬쩍 운동 이야기를 꺼냈다. 날씨가 풀리면 호수공원에서 달리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작년엔 주말을 이용해 호수공원을 걷는 것 까지는 했었다. 겨울이 되면서 그마저도 못했다. 올 해는 강도를 높여 달리기를 시도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고 그런 의지를 내비쳤다. 아내는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대학원 첫 학기라 많이 바쁠 것 같아서였다. 일단 혼자라도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삼일절 오후, 기온이 오른 덕분에 호수공원엔 사람이 많았다. 점심 먹은 걸 소화시킬 겸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피트니스 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옳다구나 싶었다. 그 자리에서 검색에 들어갔다. 시설, 조건, 시간, 거리 등을 따져보고 한 곳을 정했다. 작년 말 리모델링으로 실내도 깔끔했고, 넓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게 같은 기구를 추가로 배치해 놓은 게 마음에 들었다. 트레이너의 설명을 듣고 상담을 받은 뒤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물론 아내의 허락부터 받았다. 아내도 단칼에 허락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듯 사인을 그렸다.  


운동을 그만둔 6년 전과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게 어색했고 왜 필요한 지 이해 못 했다. 3년 넘게 혼자 피트니스센터를 다니며 곁눈으로 배운 동작을 반복했고 강도도 내 마음대로 하다 보니 몸이 나아지질 않았다. 식단관리도 안 하니 몸은 늘 같은 체중과 체형을 유지했다. 지금 달라진 점은 배움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모르는 건 나보다 잘하는 이에게 배우고 익히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나도 내가 가진 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나누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 상담 과정에서 트레이너의 말이, 기초적인 동작을 배우면 응용할 수 있는 게 2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몸의 각 부위에 적합한 운동법을 배우는 게 운동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그 말에 호기심도 생겼다. 200여 동작 중 일부만 제대로 배워도 덜 지루하게 운동할 것 같았다. 그러니 어떤 배움이든 쓸모없는 게 없고, 배움으로써 삶은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일이 첫 PT인데 한 주 미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 오후 트레이너에게 PCR 검사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 결과에 따라 한 주 미룰 수도 아니면 지옥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몸이 버텨내질 못 하겠지만 그래도 내 건강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임하자. 살살해 준다고 했으니 일단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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