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올 테니 기다려라
퇴근 5분 전, 현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목적은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퇴근 후 소주 한 잔.
27년 지기 친구라 척하면 척이다.
현석이도 오랜만에 이른 퇴근이라 내 생각이 났단다.
미리 정하지 않은 약속이라 조심스레 묻는다.
"퇴근하고 뭐 하냐? 약속 없으면 소주 한잔할까?"
술 끊은 걸 알면서도 조심스레 묻는 건 오랜만에 만나고 싶다는
의미가 더 컸다.
나도 잠시 망설였다.
술은 끊었지만 저녁은 먹을 수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만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 안 마시는 나를 마주하고 있을 현석이는 어떤 느낌일까?
금주를 결심하고 친구들에게 알렸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 들수록 친구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친구를 만나 술 한잔 나누며 회포를 푸는 게 인생의 낙 아니겠냐고.
맞는 말이다.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중에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격이 없이 소주 한 잔
나누는 것만큼 커다란 즐거움도 드물다.
알면서도 굳이 술을 끊은 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술에 의지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중독인 듯 중독 아닌 그런 상태였을 수 있다.
별일 없으면 없다는 이유로 마시고,
주말이면 나에게 보상하는 차원으로 마시고,
외식하면 당연히 소주 한 병은 마셔줘야 하고,
늦은 밤 심심하면 생각 없이 맥주 한 캔씩 마셨다.
이런 게 중독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었다.
먹는 걸 조절하고 운동을 해도
술을 마시면 효과가 반감될 게 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끊어야 하는 건 분명했다.
막상 술을 끊고 나니 친구나 지인과의 만남에도 소극적이 되는 것 같았다.
술은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시켜주는 윤활유나 마찬가지다.
많이 마시든 적게 마시든,
술을 사이에 두고 만나야 덜 어색하고 더 친밀감을 갖게 된다.
지금껏 살면서 술자리를 가장 많이 가진 게 현석이다.
서로의 주사도 주량도 알고,
좋아하는 안주, 싫어하는 안주도 알고 있다.
한 달 만에 만날 때,
일주일 만에 만날 때든 마주한 그 순간은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한두 잔이 오고 가야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이 술술 나온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지기도 한다.
멀뚱하던 시작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깊고 끈끈한 대화가 오간다.
그러니 맨 정신에 안주만 먹으며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현석이의 제안을 거절했다.
저녁 먹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친구 다 떨어져 나가는 거 아니야? 외톨이 안 되게 적당히 하셔"
사람은 사람 사이에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혼자 잘 살겠다고 외딴섬에 살면 외롭기만 하다.
어울려 살려면 요령도 필요하다.
술을 안 마셔도 원만하게 사는 이들도 있다.
술을 잘 마신다고 완벽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최선이라고 했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차치하더라도
분위기에 맞게, 상황에 따라
자신의 주량껏 마시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외딴섬에 혼자 잘 살기 위해 술을 끊은 게 아니다.
나이 들수록 더 다양한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내 건강부터 챙기려고
적금 넣는 심정으로 금주하고 있다.
만기를 정해놓지 않은 적금이라
언제까지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그때,
술과 함께 사람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 한다.
힘없이 전화를 끊는 현석이에게
아쉽고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갈 그때까지 기다려주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