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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6. 2022

공감이 서툰 나는, 아빠입니다

2022. 07. 06.  07:44



"공감에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공감은 부자나 고학력자나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이의 것이다. 또한 공감에는 남을 전염시키는 특징이 있기에, 당신이 먼저 베풀면 열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아서 P. 시아라미콜리 & 케서린 캐첨


공감은 돈이 들지 않는,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훌륭한 기술입니다. 필요한 건 진심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올바로 공감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공감은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정작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술학원에서 돌아온 둘째는 배가 고프다면 군것질꺼리 탐색에 들어갔습니다. 수납장 여기저기를 열어보며 먹을 게 없는 지 뒤졌습니다. 급한대로 삶은 달걀 먹으라고 했지만 눈길도 안 줍니다. 어디서 찾았는지 쿠키 한 봉지를 이미 열어 먹고 있습니다. 먹는 걸 말릴 수도 없어서 서둘러 저녁밥을 차렸습니다. 물론 저는 아내 옆에서 시키는 걸 했습니다. 분홍 소세지에 달걀물을 입혀 구워냈습니다. 굽는 동안 아내는 반찬을 꺼내 그릇에 담습니다. 다 차려진 밥상에 마지막으로 순두부찌개를 담아 냈습니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자리에 앉으니 8시가 다 되었습니다. 


채윤이는 밥을 먹든 티비를 보든 공부를 하든 언제나 말이 많습니다. 쉼없이 말하니 에너지도 빨리 떨어지고 먹고 나면 또 먹을 찾는 것 같습니다. 간식은 간식이고,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숟가락을 들어 한 입씩 가져갔습니다. 한 입으로 밥을 씹으면서 다른 한 입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어제 단원 평가를 봤다고 합니다. 과학이었데 모르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손도 못 댔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아내가 문제가 뭐였는지 묻습니다. 채윤이가 설명하지만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수업시간에 배웠지만 이해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몇 번 묻고 답하기 끝에 아내도 이해했는지 답일 것으로 예상되는 걸 말해 줍니다. 그제야 채윤이도 이해를 한 모양입니다. 모르는 문제를 틀린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손도 안 댄 문제가 있었다며 속상해 했습니다. 채점 결과를 받아들고서 안 푼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았답니다. 문제를 보니 답을 아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더 속상했나봅니다. 


그 말을 듣고 첫 마디가 "몰라서 틀린 건 덜 억울하지만, 안 풀고 틀린 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였습니다. 제 말에 아이는 "그래도......."라고 답하고 맙니다. 뒤로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지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듣고만 있었습니다. 저도 속으로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라고만 되뇌였습니다. 어쩌면 흔히 있는 대화 내용입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잡담처럼 늘어놓는 시간입니다. 시험을 망쳤다고 짜증을 내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듣는 입장에서도 '그랬구나'정도로 반응하면 될 겁니다. 하루가 지나서 다시 그 상황을 생각해봤습니다. 부모가 듣기에 별일 아닐 것 같은 일도 아이 입장에서는 적어도 그 순간 진지했을 수 있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낙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채윤이가 말하는 그 순간 '공감'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저 '정말 속상했겠구나'이 한마디를 먼저 했다면 어땠을까요? 채윤이도 풀지 않은 문제는 점수에 반영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아는 걸 굳이 아빠까지 확인사살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빠 입장에서 아무리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조언을 했을지언정 그 순간 그 말이 들리기나 했을까요? 조언과 잔소리의 정의를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에 따른다고 합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조언, 좋은 말이라도 듣기 거북하면 잔소리라는 겁니다. 부모는 잔소리를 가장한 조언에 능숙합니다. 아이들 귀에는 그저 잔소리일 뿐이고요. 부모 자식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도 조언과 잔소리의 경계를 구분짓지 못해서 아닐까요? 공감이 필요한 순간 잔소리를 하고, 조언이 필요한 순간도 잔소리를 하면 아이들은 귀를 닫을 겁니다. 귀를 닫으면서 관계에도 벽이 생길테고요. 


"공감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과 의미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싶은 욕구나 의향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의 삶을 살 것이고, 감정과 생각은 서로 연관성을 잃으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줄 이해의 다리가 놓이지 않은 자기만의 섬에 제각각 갇혀 지낼 것이다."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아서 P. 시아라미콜리 & 케서린 캐첨  


누구보다 끈끈한 관계가 필요한 게 부모자식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면서 끈끈했던 관계도 서서히 접착력을 잃어갑니다. 아이의 독립은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관계까지 소원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의 접착력을 높이는 데 공감이 도움이 될 겁니다. 조언이 필요한 대화에서도, 잔소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공감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공감 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는 분명 부모에게 친밀감을 더 느낄 겁니다. 저도 이 책에서 배운대로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공감을 잘하는 아빠가 된다면 분명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끈끈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거라 믿어봅니다.



2022. 07. 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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