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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3. 2022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2022. 07. 13.  07:42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집을 나서는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우산을 들어야 하고, 옷과 신발이 젖지 않게 신경 쓰고,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근 자체가 싫은데 우산까지 들어야 하는 게 짜증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으니 반쯤 체념하고 우산을 편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건설현장은 일을 안 하는 곳이 많다. 실내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은 상관없다. 실내도 습기로 인해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곳은 작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현장 근무를 10여 년 했었다. 대부분 야외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니 비가 오면 작업을 안 한다. 근로자는 쉬는 날이다. 관리자는 쉬지 못한다. 밀린 업무를 하는 날이다. 비 피해가 없도록 조처해놓고 사무실에 모여 못했던 업무를 처리한다. 시끌벅적하던 사무실에도 정적이 찾아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이성보다 감성이 자극받는다. 짬밥이 높은 상사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지루하다. 빗소리에 부침개 붙이는 소리가 떠올랐는지 막걸리가 생각난단다. 제 할 일 하는 직원들 눈치를 살피며 한 잔 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마음이 통하는 순간 직급을 떠나 대동 단결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다고 사원이나 대리가 동참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들은 열외다. 나는 겨우 턱걸이로 따라나선다. 하루 세 끼를 책임져주는 지정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미 일당을 공친 근로자 몇몇이 막걸리에 파전을 먹고 있다. 거리를 두고 우리도 자리 잡는다. 자칫 합석이라도 해서 술을 마시다 보면 아름답지 못한 장면이 연출되는 걸 자주 겪었다. 그래서 은연중에 적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식당 주인은 분주해진다. 안주가 될 만한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날의 매출은 술과 안주에서 나온다. 손님들의 기분을 얼마나 잘 맞춰주느냐에 따라 수입도 달라진다. 술에 취하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가끔 재료가 없는 안주를 주문하기도 한다. 그래도 어디서 구했는지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낸다. 그 정도 융통성과 실력을 갖춰야 수백 명의 식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난감한 부탁에도 기꺼이 만들어낸 주인이 고마워 술 한 잔을 권한다. 그걸 시작으로 어느새 한 자리에 둘러앉는다. 다른 손님은 이모님이 상대한다. 우리와 식당 주인, 또 언제 합석했는지 알 수 없는 거래처 사장까지. 그렇게 비가 오는 내내 낮술의 향연은 이어진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 낮술을 마시면 하루가 길다. 술도 잘 안 취한다. 영양가 높은 안주와 진솔한 대화가 오가며 밤과는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저녁에 마시는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면, 낮술은 교감하기 위해 마신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찾는 사람이 없다면 퇴근 이후까지 술자리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대화의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각자에 대한 불만, 일에 대한 고민, 가정의 대소사까지. 취기가 돌기까지는 대화 다운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다. 특히 낮술 먹고 취하면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 낮술을 과하게 마시면 개보다 못한 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기분 좋게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나면 유대감이 더 끈적해진다. 그러나 기분에 취해 술에 취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을 때는 후회만 남는다. 평일 낮, 오랜만에 만끽하는 일탈이라 마음껏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인 것 같다. 망아지가 되는 건 고삐가 풀렸기 때문이다. 술술 들어가는 낮술이 그동안 쥐고 있던 고삐를 풀게 만든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직원과 근로자, 근로자와 식당 주인, 근로자끼리 등등 못 볼 꼴을 연출하게 된다. 비가 안 왔으면 안 봐도 될 그런 모습들이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맑은 날과는 다른 하루가 이어졌던 것 같다. 비록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일에 치여 피로가 쌓이고 사람에 시달려 마음이 심란할 즘 때마침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낮술로 달래주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비 때문에 옷과 신발이 젖고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만 어쩌다 내리는 비는 내달리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 같다. 낮술을 마셔야 하는 건 아니지만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창문을 때리는 비만 보고 있어도 감성이 요동칠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이니 요동치는 감정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온몸과 마음을 내 맡겨보고 나면 처음보다는 훨씬 가벼워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2022. 07. 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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