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에겐 엄마가 롤모델

by 김형준

2022. 08. 08. 07:37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독서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자신의 책 《지성만이 무기다》에서 정독에 대해 말한 부분이 있습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정해 1년 동안 꼼꼼하게 읽는 것입니다. 책 내용은 물론 그 책이 다루는 다른 책과 인물에 대해서도 폭넓게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권을 읽고 나면 생각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건 두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배울 점이 있는 대상 즉, 롤모델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배우고 따라 하면 분명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스물네 살,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졌습니다. 그때까지 스무 번 가까이 이사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한 집에 일 년 이상 살았던 적이 드물었습니다. 이삿짐은 이사를 할 때마다 늘었습니다. 늘어난 짐 속에 한결같이 따라다닌 게 있었습니다. 위인전집이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은 좋은 책을 읽기 바라셨는지 여러 종류의 전집을 구해주셨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책들이 사라지기까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수십 권을 옮기느냐 힘을 뺐지만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늘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만 읽고 말았습니다. 책보다는 TV를 더 좋아했고, 공부보다 밖에서 노는 게 더 좋았습니다.


큰형은 책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사 준 책은 다 읽었습니다. 형제 중 유일하게 책을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많은 책을 섭렵해서인지 말을 잘했습니다.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블로그에 글도 많이 남겼고 글 솜씨도 남달랐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형이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말해줍니다. 집에 있는 책은 모조리 읽고 또 읽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기특해 아마 더 많은 책을 구해왔던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형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멋진 인생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건강 문제도 있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아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직장 생활도 제대 못했고 하고 싶은 일도 못 찾은 체 2, 30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마흔이 넘어 직업으로 찾은 게 사진작가였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5년 넘게 누구보다 열심히 해냈습니다. 수만 장의 사진이 그런 형의 열정을 말해주었습니다. 형이 생을 다하고 떠난 뒤 생각해봤습니다. 늦게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방황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헤맸던 것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늘 돌아봤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을 겁니다. 답을 찾아 닿은 곳이 사진작가였을 겁니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 스스로를 붙잡아 준 게 책이었고, 책을 통해 탐구했던 여러 위인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했습니다.


저도 마흔이 넘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위인을 찾기보다 같은 시대를 사는 인물을 탐구했습니다. 살면서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을 먼저 깨우친 인물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알아갔습니다. 그들의 깨달음을 거울삼아 배워야 할 것들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탐구하고 배우고 실천한 덕분에 은퇴 후 새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큰형이 늦은 나이에 자신의 일을 찾았던 것처럼 말이죠. 사람을 통해 사람으로서 잘 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서 배운다고. 부모의 태도가 자식에게 본보기가 되고 가치관을 갖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자식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두 경우 삶을 살아낸 이들의 결과를 책을 통해 접하며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큰딸, 아직 사춘기와는 거리가 먼 둘째 딸. 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위인전에 담긴 인물만큼의 올곧은 삶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삶이 나은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멀리서 찾기보다 몸을 비비고 사는 가족에게서 배울 수 있기 바라는 마음으로요.

아버지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한계가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가 제일 잘 안다고들 합니다. 아내와 딸의 모습을 보면 제가 끼어들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아내도 사춘기 딸처럼 같은 시기를 겪어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고민을 하며 성인이 되었습니다. 아내도 큰딸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수시로 전합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내의 삶만 놓고 보면 분명 인생에 필요한 많은 걸 체득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사회에서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큰딸에게 바람이 있다면 엄마를 통해 많은 부분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보이는 모습, 대화 속에서, 행동에서 비롯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익혔으면 합니다. 위인들의 이야기는 그다음에 배워도 늦지 않을 겁니다. 분명 위인들보다 부모 아니 엄마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삶에 더 필요한 것들 일 겁니다.


2022. 08. 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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