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함의 상징, 나이키 운동화

by 김형준

2022.08. 29. 07:43



결핍,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고 합니다. 지독한 가난을 겪은 뒤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에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돈, 배움, 집, 음식 등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냅니다. 누가 시켰다면 못했을 겁니다. 스스로 느끼고 깨달으면서 한 발씩 나아갔습니다. 중간에 고비를 만나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핍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가난을 겪은 사람만이 결핍을 경험하는 건 아닙니다. 안정된 삶에서도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노력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결핍, 채우고 싶은 욕구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훌륭한 도구라 생각합니다.


올여름 몇 주간 이어진 폭우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옷과 신발이 젖는 건 일상입니다.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의 외모가 달라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즈음 비가 온 날이면 큰딸은 양말이 젖은 채로 들어섰습니다. 비가 오니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젖었다 말렸다를 반복한 신발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 악취가 났습니다. 아내는 신을 신발이 없다는 딸의 말에 며칠간 눈치만 봤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작정하고 신발을 빨았습니다. 다 빨고 나더니 신발 앞이 찢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비 오는 날 같은 신발을 계속 신었으니 양말이 젖는 게 당연했습니다. 새로 산지 몇 개월도 안 된 신발이었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깨끗이 빨았으니 비 안 오는 날만 신으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좋아하는 신발을 맑은 날에만 신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며칠 고민 끝에 새 신발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앞이 찢어진 지금 신발을 살 때 큰딸이 사고 싶었던 신발은 따로 있었습니다. 나이키 에어맥스였습니다. 가격은 두 배 차이였습니다. 그때는 큰딸을 설득해 휠라 운동화를 사주었습니다. 까탈스럽지 않은 성격 탓에 순순히 엄마의 뜻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어코 본인의 뜻대로 나이키를 샀습니다. 아내도 덩달아 좋아합니다. 발 사이즈가 같아서 빌려 신겠다고 했답니다. 아내와 제가 학생 때 나이키 신발은 워너비 중 하나였습니다. 친구 중에도 나이키 신발 신은 친구를 부러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럽다고, 사고 싶다고 부모님께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나이키는 운동화 중에서 가장 비쌌으니까요. 대단한 각오로 사준 운동화이니 오래 깨끗하게 신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었지만 한 번도 사 신은 적은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준 적도, 내가 돈을 벌어도 선뜻 사지 못했습니다. 갖고 싶은 마음이 있고 신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면 가질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돌이켜보면 부러워만 했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지, 방법을 찾을 시도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겐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갖고 싶은 걸 얻는 방법이 있다면, 반대로 포기하면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였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해도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지레 포기했던 겁니다. 신발뿐 아니라 지금껏 살면서 많은 부분 쉽게 포기했습니다. 성적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공부에 욕심내지 않았고, 좋은 직장을 갖고 싶으면서도 자기 계발을 소홀히 했고, 좋은 부모가 되겠다면서 소통하는 방법도 실천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결핍이 있으면서도 채우려는 노력을 안 했습니다.


마흔을 넘기고 은퇴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장사, 사업, 전문직 은퇴 이후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떠오르는 일은 있지만 자신은 없었습니다. 장사도 소질이 부족할 것 같고, 사업도 역량이 딸릴 것 같고, 전문직은 공부머리가 부족해 시험도 제대로 못 볼 것 같았습니다. 평생 직업은 필요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긴 시간 책과 씨름한 끝에 새 직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매일 시도하며 제 역량을 시험해보고 있습니다. 직업에 대한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책에 도움을 받고, 매일 정해놓은 대로 실천하며 제 일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서 그동안 걱정만 했던 여러 부분도 조금씩 채워가고 있습니다. 안정된 수입은 차치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홀로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람의 도움은 필연적입니다. 다양한 기회가 생기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곁에 두고 싶은 사람도 얻게 되었습니다. 나사가 빠져 딸깍거리던 의자가 고정되는 것처럼, 사람이 필요한 자리에 새 사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결핍을 결핍으로 두지 않고 노력했기에 지금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노력 자체가 풍족한 삶일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채우는 게 아닌, 채우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풍족한 삶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요? 사춘기 큰딸에게 나이키 신발은 갖고 싶은 것 중 하나였습니다. 신발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찢어진 신발을 신는 게 안쓰러워 사준 것뿐입니다. 큰딸에게 바람이 있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갖고 싶은 걸 부모가 사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필요를 못 느낄 것입니다. 갖고 싶은 걸 스스로 얻기 위해 노력해보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운동화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선순환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줄 거라 믿습니다.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이야말로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좋은 동기가 될 테니 말입니다.



2022. 08. 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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