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24. 07:40
'우리 삶에서 의존이 필요한 시기는 분명 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언제나 진정한 의미의 의존을 경험한 후에야 더 쉽게 성취된다. 의존해야 할 시기에 마음껏 의존할 수 없을 때 독립은 더 어려운 과제가 된다.'
선안남 상담심리사가 쓴 《상처받는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에 나오는 글입니다. 완전한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스스로 때가 되었을 때 몸도 마음도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오롯이 부모의 보살핌을, 이왕이면 건강한 보살핌을 받아야 독립 이후도 온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의존 즉, 결핍, 불안, 상처를 경험하면 겉모습만 분리될 뿐 여전히 의존하고 보호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26살부터 혼자 살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준비가 되었다기보다는 집을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더 컸습니다. 가족 안에 머물고 싶을 만큼 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습니다. 잦은 불화를 겪으며 마음 한편에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의 이혼으로 상처를 봉합할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두 분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체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고, 남겨진 우리는 스스로 상처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함께 살기보다 떨어져 지내면 제가 가진 상처를 묻어두고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마주치지 않으면 적어도 과거의 기억이 덜 떠오를 테니까요. 몸이 떨어지니 마음은 홀가분했습니다. 자유로운 일상에서 얻는 기쁨으로 과거 기억을 조금씩 덮어갔습니다. 돈도 벌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했습니다.
독립을 한 이후로 집을 찾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명절에 모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가족이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찾아갔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운 마음이 자라지 않게 혼자 지내는 데 더 익숙해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쩌다 만나는 자리도 무덤덤했습니다. 그저 몇 마디 안부 인사만 주고받는 게 전부였습니다. 아쉬운 부탁을 할 일도 없었고,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완전한 독립으로 보였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한 선택에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셨습니다. 간섭할수록 더 어긋났습니다. 어머니의 선택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냥 놔두었으면 좋겠다고 고래고래 질러도 봤습니다. 어머니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사건건 부딪혔지만 당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할수록 과거 '우리'가 떠올랐습니다. 두 분의 잦은 다툼과 별거, 아버지의 거친 모습,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던 어머니의 악다구니.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던 형과 나. 잊고 지낼 땐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번번이 부딪힐 때면 여전히 어릴 적 저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상황을 부모님 탓이라 여겼습니다. 그때 만약 행복했다면 지금 이렇게 부딪힐까? 그때 만약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면 지금 이렇게 독립했을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가장 노릇을 합니다. 여전히 어머니에겐 막내아들입니다.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땐 당신에겐 그저 철없는 아들로만 보이나 봅니다. "잔소리 말고 말하는 대로 해라." 여전히 당신이 옳습니다. 변하지 않는 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저 깊은 곳에 눌러둔 불만이 터져 나와 주변 사람을 당혹 케도 합니다. 그럴 땐 저도 제가 이해 안 됩니다. 아직도 과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투정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가정을 책임진다면 분명 독립한 게 맞을 텐데 아닌가 봅니다. 마음은 아직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나 봅니다.
사춘기 딸을 보면 엄마와 공유하는 게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물론 정서적인 교감과 여자끼리만 통하는 그 무엇까지도요. 서로를 못마땅해하면서도 한없이 애틋해지기도 합니다. 아직은 '공존'이기보다 딸이 더 '의존'할 것입니다. 딸은 사춘기를 처음 겪지만 엄마는 이미 겪었다는 걸 알기에 의지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도 그런 딸을 이해하기에 애정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툴툴거리기는 해도 행동에서 보이는 마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엄마도 큰딸에게 충분한 애정을 주고, 큰딸도 엄마를 통해 안락함 느꼈으면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충분히 의존했다고 느낀다면 분명 큰딸도 몸뿐 아니라 마음의 앙금이 없는 온전한 독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야 합니다. 시기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마음에 상처가 없는 건강한 독립입니다. 지금의 저와는 다른 삶이길 바라며 사춘기 딸에게 이렇게 마음을 전합니다.
2022. 08. 24.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