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고 볶아도 남는 건 형제뿐

by 김형준

2022. 07. 28. 07:42



글 쓰는 데 도움이 돼서 피아노 협주곡을 매일 듣습니다. 클래식을 들으면 좋다는 말에 무작정 듣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시간 카페를 찾아 지정석에서 글을 씁니다. 이어폰에는 클래식이 들리고, 매장 안에는 피트가 강렬한 힙합이 흘러나옵니다. 잔잔한 음이 흐르는 귓속으로 둔탁한 피트가 파고듭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불협화음을 내기도 합니다. 형들과 관계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상 둘도 없이 다정할 때가 있었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거리를 둔 적도 있었습니다.


두 살 터울 삼형제입니다. 큰형이 고2 때였습니다. 그때는 웃을 일이 더 많았습니다. 주말 내내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셋 다 공부보다는 노는 데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니 이 동네 저 동네를 오가며 있는 일 없는 일 다 만들며 놀았습니다. 한 번은 옆 동네 원정을 갔다가 또래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노는 건 잘해도 싸움에는 순둥이였습니다. 셋 다 겁이 많았습니다. 시비가 붙을 일을 안 만들었습니다. 다툼이 있어다기보다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작은형과 나는 큰형 뒤에 숨었습니다. 큰형도 겁이 났지만 먼저 숨어버린 동생 때문에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동생을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발동해 우리를 등 뒤로 숨긴 걸 수도 있습니다. 작정하고 달려드는 상대 때문에 상황은 점점 험악해졌습니다. 상대는 형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숫자도 우리와 같았습니다. 만약 주먹질이 오간다면 형 혼자 감당 못할 것 같았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작은형과 나는 당연히 형을 도와 맞섯을 겁니다. 침착하게 대처한 큰형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등 뒤에서 바라본 큰형은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부모님은 장사로 세 아들을 키웠습니다. 대부분의 장사가 그렇듯 집안일에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해였습니다. 작은형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큰형은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도 장사를 했고 가게 옆 반지하 집에 셋만 지냈습니다. 그때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녁에는 셋이 모였고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입니다. 큰형은 입었던 옷과 양말은 아무렇게나 벗어놓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잔소리를 했습니다. "양말이랑 옷 좀 반듯하게 벗어놔라." 십수 년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렵지 않은 일인데 왜 안 될까 의아했습니다. 보다 못해 저도 잔소리를 했습니다. 같이 살면 지킬 건 지키자고. 그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알아서 할 테니 놔두라는 말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큰형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 후 결혼까지 이어지면서 큰형과는 더 멀어졌습니다. 어쩌다 만나도 데면데면했습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다 보니 대화할 거리도 없었습니다. 한두 마디 대꾸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물과 기름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신장이 약했던 큰형은 마흔 중반에 병세가 악화되었습니다. 당뇨까지 겹쳐 결국 투석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받았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사진 찍는 일을 시작했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습니다. 투석은 형의 발을 묶었습니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수십만 장의 사진을 남겨놓고 마흔아홉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간다는 인사를 남기지도, 잘 가라는 인사를 듣지도 않고 혼자 그렇게 갔습니다. 한때는 세상 누구보다 든든했고, 한 때는 세상 누구보다 미웠던 큰형이었지만 홀연히 떠나고 나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후회가 남았습니다.


사춘기 딸에게는 네 살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성격은 정 반대입니다. 활발하지만 반대로 여리고 겁이 많습니다. 큰딸도 겁이 많고 여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둘째도 언니를 함부로 못합니다. 둘 만 있으면 언니가 자신을 보살피는 존재라는 걸 아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있을 때만 언니에게 덤비는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 형제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남의 동생에게는 친절해도 내 동생은 미운 티를 팍팍 냅니다.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소중하기에 서로에게 잘해주라고 말하지만 귓등으로 듣습니다.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지고 볶아도 결국 내 곁에 남는 건 언니 동생뿐이라는 것을요. 큰형을 잃고 난 뒤 깨달은 겁니다. 부디 두 딸이 이런 저의 바람을 조금이라도 일찍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을요.


2022. 07. 2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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