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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6. 2022

빈 종이가 두렵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2022. 09. 26.  07:38




주말과 평일의 구분이 없어진 지 수십 개월째다. 5시 전에 일어나 9시까지 글을 쓰는 건 변함없다. 출근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일 뿐이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여러 종류의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제나 시작은 망설여진다. 


둘째 학원비라도 벌고 싶어 크몽에 전문가로 등록을 했다. 등록은 했지만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4건 의뢰받았다. 지난주 한 건 추가해 5건을 진행했다. 자기소개서 첨삭을 서비스 상품으로 올렸다. 이런 글은 비교적 쓰기 수월하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전달받아 있는 그대로 보완해 주면 된다. 소재가 명확하니 구성만 고민하면 된다. 시간도 많이 빼앗기지 않는다. 하루 1시간씩 이삼일이면 마무리된다. 다행히 까다로운 고객을 만나지 못했고, 결과물에 대체로 만족해했다. 건설업에 20년째 몸담고 있는 장점을 살려 동종의 자소서를 검토하니 나름 경쟁력도 있다. 또 동종에 일하는 후배라고 생각하니 더 애정을 갖게 된다. 정해진 분량을 넘기기 일수다. 읽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글자 수가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문장을 줄이고 줄여야 한다. 덕분에 문장을 짧게 쓰는 공부는 덤이다. 나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바라는 결과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합격 후기를 전해 준 이가 아직은 없다. 당연히 합격하길 바라고 첨삭을 한다.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되면 좋겠지만 이런 노력에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의뢰가 마무리되면 항상 같은 말을 남긴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퇴고를 진행 중인 원고도 수월한 편이다. 다 써놓은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고치는 지루한 반복이다. 어떤 문장은 단어나 조사만 고치고, 어떤 단락은 들어내기도 하고, 어떤 꼭지는 완전히 새로 쓰기도 한다. 새로 쓰는 글도 그나마 시작이 수월하다. 왜냐하면 글 전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게 끔 소재와 사례를 찾으면 된다. 맨땅에 헤딩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새로 쓴 글도 다시 몇 번을 읽으며 고치기를 이어간다. 퇴고는 정말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걸 실감한다. 시간은 곧 정성이다.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 얼마큼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원고의 질이 달라진다. 객관적인 질이라고까지는 못하겠다. 내가 읽었을 때 지난번보다 나아졌다면 분명 조금 더 나은 글을 쓴 거라 생각한다. 퇴고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이 결국엔 내가 바라는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일 테다. 


문제는 빈 화면과 마주하고 새 글을 쓰는 시간이다. 주제부터 소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내용을 쓰려면 일단 손이 멈춘다. 그래서 많은 책과 작가들은 메모를 하라고 한다. 평소에 쌓아둔 메모가 곧 글감이 된다고. 맞는 말이지만 실천을 못한다. 작가는 메모가 전부라는 말도 있다. 메모하지 않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영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감은 생각을 의미한다. 생각은 시시때때로 생기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불현듯 낯선 생각이 최상의 글감이 되기도 하고, 오랜 고민 끝에 얻은 명쾌한 해답 또한 훌륭한 글감이 되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색이 바랜 낙엽이 썩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한 가지 해결 방법이다.


바로 글이 써지지 않는 그 상황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연상되는 단어를 나열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단어를 적었다. 그렇게 대충의 뼈대를 만들었고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마법은 그때부터 일어난다. 쓰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써야 할 내용이 커튼을 젖히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적합한 표현도 있고 주제와 다른 내용도 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관련된 내용을 계속해서 끄집어낸다. 그렇게 써내려 가니 여기에 이르렀다. 처음 한 편을 어떻게 써야 막막했다가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음이 다 후련하다. 글이 안 써지는 지금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적으면서 이렇게 또 한 편을 완성했다. 


빈 화면은 언제나 두렵다. 두렵다고 주저하고 있기보다 일단 아무 단어나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던져보는 거다. 씨앗을 하나만 심는 것과 같은 씨앗을 수십 개 심을 때 꽃이 필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쓰고 싶은 글이 있거나, 써지지 않을 때에도 일단 흰 종이에 아무 단어나 던져보자. 아무렇게나 던진 돌에 월척이 걸릴 수도 있다.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어쩌다 한 번에 또 다음 글을 쓸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      



2022. 09. 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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